박수칠때 떠났던 룰라의 컴백…'브라질 트럼프'와 싸운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23 16:38

업데이트 2022.01.23 16:4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7일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7일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박수칠 때 떠났던 이가 다시 돌아왔다. 퇴임 후 뇌물수수 혐의로 복역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77) 전 브라질 대통령이 일단 혐의를 벗고 정계 복귀 수순을 밟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극우 전직 군인(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맞서 싸우는 것이 내 책임”이라며 올해 10월 2일 브라질 대선을 앞두고 출마 의지를 밝혔다. 현재 이미 각종 조사에서 보우소나루를 20% 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는 만큼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10월 브라질 대선 출마 예고
여론조사 20%p 앞서며 선두

보우소나루는 최근 한 집회에서 “오직 신(神)만이 나를 쫓아낼 수 있다”며 권력 의지를 다졌다. 룰라는 “보우소나루는 쿠데타를 일으킬 정치적인 힘도 없고 트럼프식 선거무효 운동을 촉발할 충분한 지지 기반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대다수는 보우소나루의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그가 물러나기를 바란다”며 “그는 선거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한 얘기다.

3선 연임 고사하고 화려한 퇴장

지난해 12월 22일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과 만난 룰라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2일 상파울루의 룰라 지지자. AFP=연합뉴스
브라질 상파울루시에서 지난해 6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과거 군사독재정권을 겪은 노인들이 '보우소나루 퇴진', '군사독재 더는 안돼'라고 적힌 현수막 등과 함께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운동가 출신의 룰라는 네 번의 도전 끝에 2003년 1월 대통령에 취임, 재선까지 성공해 2010년까지 집권했다. 퇴임을 두 달 앞둔 그의 지지율은 80%에 달했고, 그의 3선 연임을 위한 개헌 여론도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그는 스스로 물러났다.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룰라의 시련은 퇴임 후 시작됐다. 여당인 노동자당(PT)의 부패 스캔들의 책임론과 개인 비리 혐의가 불거졌다. 그는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2년형을 받고 2018년 4월 수감됐다.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시도했지만, 피선거권 박탈로 출마는 무산됐고, 대타로 내세운 페르난두 아다지 전 상파울루 시장은 보우소나루에게 패했다. 이후 2심의 유죄 판결만으로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룰라는 2019년 11월 석방됐다.

룰라가 올해 대선에 나올 수 있게 된 건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3월 “룰라에 대한 수사와 판결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룰라에게 선고된 실형은 모두 무효라고 판결하면서다. 지난 2019년 6월 폭로된 판검사 담합 의혹을 대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지난해엔 판검사들이 룰라 전 대통령을 기소하기 전 암호화 메신저를 통해 비밀대화로 의견을 조율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룰라는 텔레그래프에 “나는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전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박수 속에 임기를 마쳤던 룰라였지만 '포스트 룰라'에선 국정 혼란이 가중됐다. 룰라의 후광으로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지우마 호세프(75)는 경기침체 책임론과 여당의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결국 탄핵당했고 노동자당은 보우소나루를 앞세운 극우 세력에게 정권을 내줬다. 룰라 집권기 GDP 세계 5위를 넘보던 브라질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고꾸라졌다. 지난 2020년 경제성장률은 1996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저조한 -4.1%를 기록했다.

“미중 패권에 도전할 동맹 구축”

지난해 12월 17일 로이터와 인터뷰하는 룰라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7일 로이터와 인터뷰하는 룰라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룰라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언했다. “내가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합리적으로 하려면 대통령이 되는 수밖에 없다”면서다. 그는 “보우소나루의 후임은 누구나 경제성장과 사회정의 실현 등 브라질 재건에 나서야 한다”며 “기아를 근절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을 겨냥해 “수백만 명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우주관광을 위해 로켓을 만드는 억만장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또 기후 위기가 아마존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을 잇달아 방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중 패권에 도전할 남미 동맹 추진 계획도 밝혔다. 그는 “미국과 중국 간 신(新) 냉전 시대에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의 주권과 지위를 강화하겠다”며 “우리는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는 다원화된 세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의 귀환이 오히려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룰라 자신의 의혹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데다 노동자당의 부패 스캔들과 극우 세력 집권을 자초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룰라는 그러나 “정당의 일원이 잘못했다면 법의 테두리에서 처벌받아야 하지만, 개인의 실수를 수천 또는 수백만 명의 집단과 혼동해선 안 된다”며 “그게 바로 정치를 악마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독일이나 최근의 브라질에서 보듯 역사는 ‘정치가 부정되면 항상 더 나쁜 일이 뒤 따른다’는 걸 가르치고 있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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