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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달전 마지막 인터뷰…그가 밝힌 30년 전의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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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18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무총리 앞에 밀린 안건이 이만큼 쌓여있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안건을 차마 맨 위는 아니고 위에서 한 대여섯 번째 순서에 집어넣었지. 이런 드라마는 세상에 없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비화 #"예술가는 예술학교 없으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들" #한예종 김대진 총장에 "기술과 경쟁말고 올라타라"

이어령(88) 전 문화부 장관의 투병으로 야윈 얼굴에 장난기가 번졌다. 18일 서울 평창동의 자택.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대진(60) 총장이 찾아온 참이었다. 이 전 장관은 올해 개교 30주년이 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분 단위로 기억하고 있었다.

첫 문화부 장관이었던 그의 임기 마지막 날, 1991년 12월 19일의 아침 이야기다.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8시에 국무회의를 열었고, 9시에 노태우 대통령과 독대했다. 개각을 확정 짓고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청사에서 청와대까지 이동해야 하는 15분을 빼면 회의가 딱 5분 남은 상황이었지. 그때 내가 위에 넣은 안건이 딱 올라온 거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이었다. 영재교육, 실기교육을 통해 예술인을 키우는 문화부 산하의 학교를 세우자는 내용이었다. “안이 나오자마자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난리가 난 거야. ‘왜 문화부만?’하고. 그때 내가 한 말이 있었지.”

이 전 장관은 그렇게 마지막 5분을 이용했던 연설을 들려줬다. “지금 예술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엘리트가 아니고, 사실은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여기 못 들어오면 은행원,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거죠. 하나님이 실수해서 잘못 만든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도저히 그대로 내려보낼 수 없어서 하나님의 눈곱 하나 떼어줘서 그림 그리게 하고, 귀지 하나 후벼 넣어줘서 음악가가 되게 한 겁니다.” 국무위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연설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석유와 가스 나오는 곳을 천재적으로 아는 아이가 있으면 동자부에서, 모내기 신동이 있으면 농림부에서 학교를 만들겠지만 그런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분위기는 부드러워졌고 시간은 없었다. “총리가 ‘반대 없으시지요’하고는 의사봉을 딱 두드렸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왼쪽)과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왼쪽)과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장관으로서 마지막 안건이 예술학교였던 이유는 뭘까. “학교 프레임을 깨뜨려야 했다”고 했다. “이 세상 태어날 때는 누구나 예술가로 태어나요. 뭘 보면 아느냐. 유치원 애들은 못 그려도 즐겁게 그리잖아. 그런데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하면 아무도 손을 안 들어. 그게 학교야. 이걸 깨뜨리고 새로운 걸 해야 했어.” 종합 대학 안에서 엘리트를 기르는 예술 단과대학과는 달리, 아티스트를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예술학교 설립의 비화를 공개한 이 전 장관이 김대진 총장에게 말했다. “이제 내 얘긴 끝났어요.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은 거 이야기해봅시다.” 김 총장은 지난해 8월 취임했다. 피아니스트ㆍ지휘자이면서 94년부터 한예종에서 수많은 음악가를 길렀다. “앞으로 30년을 봐야 하는데, 예술가의 생명과도 같은 창의력이라는 걸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과연 가르칠 수 있는 걸까 싶고요.”

이 전 장관이 이 질문을 반가워했다. “맞아요. 공자도 퇴계도 자기 애들은 못 가르쳐서 아들이 뜰 앞을 지나갈 때마다 ‘뭘 배웠니’하고 물었다는 게 바로 정훈(庭訓) 아니오. 뜰 정(庭)자를 쓴 거지.”

미소를 띤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또 하나는 기술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제는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술 중심의 표현은 다른 곳에서 많이 나오지만, 예술 학교에서는 예술이 기반이 된 기술의 샘플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김 총장)

이 전 장관은 이번에도 동의했다. “당대의 모든 기술을 사용하고 통합하는 것, 그게 내가 꿈꾸던 예술 학교의 모습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안료를 만들어 썼는데, 그만 화학적 지식이 없어서 '최후의 만찬'이 그 당대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그 천재도! 예술가들이 경계와 장르를 허물어야 하고 AI, 메타버스 같은 기술과 경쟁하지 말고 올라타야 돼요.” 그는 “김 총장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30년 전에 꾸던 작은 꿈들이 몇 단계를 거쳐 증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몇해 전 암을 발견한 이 전 장관은 이제 병원 침대를 방에 들여놓고, 환자복 차림으로 하루 대부분 누워서 지내고 있다. 김 총장을 맞이하기 위해 보행 보조기를 밀고 천천히 걸어 나온 그는 기사에 이 대목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침울하게 지내고 기운이 없어 30분 이상 대화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야기가 90분을 넘겼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와 만나서 그래요. 오래간만에 웃어가면서 성한 사람처럼 즐거웠어요.”

예술이 퍼뜨리는 생명력에 대한 이 전 장관의 믿음은 단단하다.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뉴턴의 사과는 중력으로 떨어지지만 씨앗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올라 가요. 양력(揚力)이지. 이게 생명이고 예술이야. 내가 예술 학교 학생들을 ‘산소 호흡기’라고 부르는 이유에요. 떼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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