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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 수십조 적자인데…여야 퍼주기 공약 '묻고 더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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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나라살림을 나타내는 통합재정수지가 1970년 이후 처음으로 4년 연속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데도 여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상 초유의 돈풀기ㆍ포퓰리즘 경쟁 중이다.

23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가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제출하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은 35조원으로 늘릴 것을 주문하고, 국민의힘은 한 발 더 나간 45~50조원을 거론하고 있다.

역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후보들 간 퍼주기 공약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가상자산 투자수익에 대해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겠다고 하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윤 후보의 공약을 받고, 투자손실분에 대해 5년 동안 이월공제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가 노령연금을 연 10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하자, 이 후보는 60~65세 장년수당을 연 120만원으로 증액하겠다고 맞받는 식이다.

반대로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해 병사 월급을 200만원까지 높이겠다는 공약은 이 후보가 지난달 먼저 내놓자 윤 후보가 따라간 사례다. 이후 이 후보는 2023년부터 19~29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주는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까지 내놓았다.

이 후보가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약속하자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임신성 당뇨와 성인 당뇨병 환자에게 연속 혈당 측정기 급여화를 공약하는 등 두 후보는 '포퓰리즘'으로 비판받는 공약도 쏟아내고 있다. 공약 경쟁이 마치 ‘묻고 더블로’ 가는 포커판 레이스처럼 펼쳐지고 있다.

1인당 국가채무 급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회예산정책처]

1인당 국가채무 급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회예산정책처]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고 보자는 식의 이런 돈 풀기 경쟁의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이번 추경의 윤곽을 밝힌 지난 14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9.1bp(1bp=0.01%포인트)나 뛰어올랐다. 13일 1.953%이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1일 2.132%까지 올랐다(국채값은 하락). 적자 국채 발행이 가시화하면서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경로로 대출금리를 오르게 한다. 돈을 빌린 가계와 자영업자, 기업 등 경제주체가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에 따른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변화 분포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출금리가 1.5%포인트 상승하면 전체 대출자 중 18.6%가 소득의 5% 이상을 추가 이자로 부담해야 한다"며 "이는 매우 높은 비중"이라고 경고했다.

벌써 금리 인상 부작용 나와 

국채발행 추가 발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3% 후반을 달리는 소비자물가도 밀어 올린다.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 상황을 억제하고자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정부가 설 물가를 잡기 위해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등의 정책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통합재정수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합재정수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무엇보다 나라 곳간은 갈수록 비어가는데, 이를 채울 뚜렷한 재원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e-나라지표’와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열린재정’,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통합재정수지’ 등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흑자였던 통합재정수지는 2019년 12조원 적자로 돌아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닥친 2020년에는 적자 규모가 71조2000억원으로 불어났고, 지난해는  11월까지만 22조4000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는 본예산에서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54조1000억원으로 추산됐고, 이번 추경에서는 전망치가 68조1000억원으로 14조원 늘었다.

통합재정수지는 중앙정부의 당해연도 순수한 수입에서 순수한 지출을 차감한 수지다. 한국이 통합재정수지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후 이처럼 통합재정수지가 4년 연속으로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인 1997∼1999년에도 통합재정수지가 적자였으나, 연속 기간이 3년으로 이번보다 짧았다.

"공약(公約), 못 지키는 공약(空約)될 것" 

3월 대선 이후에는 신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한 대규모 추경이 또 편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추경 규모 확대나 대선 이후 추가 추경 등으로 지출이 30조원 넘게 늘어난다면 올해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1%가 되는데, 이 수치가 더 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여야는 모두 중요한 재원 대책 마련을 사실상 차기 정부 몫으로 미루는 모양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이나 현실성 검토 없이 두 후보 모두 표심만을 노린 ‘공약(公約)’을 내놓고 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하는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발전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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