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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의 찐 광기"…23년째 추리퀴즈 내는 국정원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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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추리퀴즈를 푸는 웹툰 작가 이말년씨. 사진 침착맨 유튜브 캡처

국정원의 추리퀴즈를 푸는 웹툰 작가 이말년씨. 사진 침착맨 유튜브 캡처

“국가정보원 사이트에 가면 나랏돈으로 이런 걸 만들어놨어요.”  

유튜브 구독자 136만 명에 이르는 웹툰 작가 이말년(38·본명 이병건)씨가 지난해 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국정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추리퀴즈를 풀며 한 말이다. 이씨는 “여러분은 국정원에서 퀴즈를 내는 걸 알고 있었나. 국정원이 수십 년째 묵묵하게 퀴즈를 올려왔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은 21일 기준 유튜브에서 62만 회 넘게 재생됐다.

“이런 것도 한다고?” 퀴즈 내는 국정원, 왜  

국정원의 추리퀴즈. 사진 국정원 홈페이지 캡처

국정원의 추리퀴즈. 사진 국정원 홈페이지 캡처

최근 온라인에서 국정원이 홈페이지에 추리퀴즈를 연재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다. “국정원이 이런 것도 하냐”며 신기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추리퀴즈는 국정원 홈페이지 참여·민원 코너에 올라온다. 국정원 측은 “뇌를 자극할 추리퀴즈를 풀고, 최고의 명탐정이 되어보라”고 안내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국가기관의 찐(진짜) 광기”라는 말도 나온다. 국정원이 추리퀴즈를 장기 연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 특성상 각종 추측도 무성하다. “퀴즈는 암호나 지령이다” “문제를 잘 풀면 국정원 특채로 들어간다” 등과 같은 장난 섞인 댓글도 적지 않다.

추리퀴즈는 독자가 탐정이 된 것처럼 주어진 각종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식으로 출제된다. 가장 최근 회차는 지난 18일 올라온 제571회 ‘도둑 발자국’ 편이다. 눈이 내리던 날 어느 동네의 빈집을 턴 도둑이 경찰에 잡혔는데, 귀금속 등 도난품이 나오지 않아 금방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다만 쌓인 눈에 도둑의 발자국이 남았다. 그가 훔친 귀금속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맞춰야 한다.

국정원에 따르면 추리퀴즈는 1999년 국정원 홈페이지 개설과 함께 시작됐다. 올해로 23년째다. 다만 홈페이지에 처음 올라온 퀴즈는 2003년 1월 27일 제94회 ‘사라진 흉기’ 편이다. 4년간 공백이 있는 데 대해 이말년씨는 유튜브 영상에서 “그전에는 자료가 소실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 관심 제고 위해 시작”

국가정보원 원훈석. 사진 국정원

국가정보원 원훈석. 사진 국정원

국정원이 20년 넘게 추리퀴즈를 연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 관계자는 “국가안보와 국정원의 역할에 대한 국민 관심, 특히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퀴즈를 시작했는데, 참여자 호응이 좋아 현재까지 연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꾸준한 인기 덕분에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퀴즈는 월 2회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국정원은 정답자 가운데 열 명을 추첨해 소정의 모바일 문화상품권도 증정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최근 1년간 매회 평균 1100명이 응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문제를 만드는 것일까. 국정원 관계자는 “추리퀴즈 계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직접 소재를 발굴·집필한 뒤 국정원의 검토를 거쳐 연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모자 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인기였던 회차는 지난해 8월 출제된 제561회 ‘탐정의 티타임’ 편이다. 평소 응모자 수의 약 9배에 가까운 9500여명이 응시했다. 탐정과 차를 마실 때 그의 사고 과정을 추리해보는 내용이 담겼다.

역사가 깊은 추리퀴즈다 보니 온라인에서는 “빨리 푸는 게 중요하다” “출제자 의도대로 서술해야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등 퀴즈 팬들의 조언도 넘쳐난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보통 방식대로 추첨을 진행하고 있다”며 “퀴즈와 채용을 엮어 생각하는 등 온라인 댓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추리퀴즈 제561회 '도둑의 티타임' (가장 인기 많았던 문제)

하루에 한 번, 시간은 오후 4시 정각에 시작해서 6시까지. 탐정과 나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이른 바 애프터눈 티, 무려 영국식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굳이 시간을 정해서 더욱 빈둥거리겠다는 심보를 이해 못하는 나는 이 티타임이 귀찮을 뿐이다. 무엇보다 뜨문뜨문 이어지는 대화가 견디기 힘들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한마디씩 던지는데, 이건 대화라기보다는 선문답 같았다.

-탐정 : 이 붉은 빛깔 좀 봐. 영롱하지 않나?
-나 : 우리가 마시고 있는 게 홍차니깐 그렇기는 한데, 글쎄? 그렇게까지 신비롭지는 않은데.

그러더니 잠시 후에는,

-탐정 : 빨래를 할 때, 좀 색깔 별로 물 안 빠지게 할 수 없어? 지금 내 이 검은색 티셔츠말야. 물이 다 빠졌잖아.
-나 : ?

홍차를 잘 마시다 갑자기 검은 티셔츠 물빠짐 타령이다… 이렇게 난해한 맥락이라니? 이 정도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 아닌가?

-나 : 영롱한 붉은 빛 다음에 세탁물 물빠짐 얘기라… 대체 자네 대화 주제를 어떻게 내가 따라가야 할까? 대화라는 건 서로 주고받는 거라고.
-탐정 : ……

정말 웃긴 건, 내 얘기를 들은 탐정의 얼굴은 나 못지않게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탐정은 자신이 홍차에 빠져있기는 했지만, 정확한 연결고리를 가진, 나름 맥락 있는 사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 사고의 연쇄 과정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지금 티타임에서 함께 마시는 홍차의 영롱한 붉은 색 -〉 ( ? ) -〉 탐정이 입고 있는 물 빠진 검은색 티셔츠 -〉 세탁 담당인 나에게 물빠짐 없이 세탁 부탁

이걸 다시 키워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대체 저 괄호 안에 들어갈 키워드는 뭘까?

홍차 -〉 (?) -〉 검은색 티 -〉 세탁

-탐정 : 괄호 안에 것도 역시 홍차와 관련이 있다네. 차를 직접 타준 자내라면 직접 봤을 테니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 한번 알아 맞춰 보겠나?

〈정답과 해설〉

▶정답:black tea(홍차의 영어명) (※마우스로 드래그하면 정답이 보입니다.)

▶해설:홍차는 찻물이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홍차라고 한다. 반면 찻잎의 색은 검은색이어서 영어로는 ‘black tea’라고 한다. 탐정은 홍차를 마시다 자연스럽게 영어명인 ‘black tea’를 떠올렸고, 이것은 자기가 현재 입고 있는 물빠진 검은색 티셔츠(블랙T)로 이어져, 물빠짐 없는 세탁을 나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마우스로 드래그하면 해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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