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천국' 통영·보령 제치고 왜 고흥? '궁극의 해장국' 있다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2022.01.22 07:30

업데이트 2022.05.06 17:15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tvN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tvN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이 달큰하고 고소하기까지 한, 시원한 맛은 무엇인가

통영에서도, 고흥에서도, 현지 사람들은 굴을 굴이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서울 사람이 ‘굴’이라고 하면 못 이긴 척 ‘굴’이라고 받아 주지만, 자기네끼리 얘기할 때에는 ‘굴’과 ‘꿀’이 수시로 교차한다. 굴이 꿀이고, 꿀이 굴이다. 오래전부터 맛있는 것은 꿀이라 불러 왔으니, 굴 맛이 꿀맛인데 어차피 무슨 차이가 있겠냐마는.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굴 맛은 사탕 맛처럼 모든 사람이 갓 태어나 입에 넣기만 하면 바로 느끼는 맛은 아니다. 굴 맛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지만, 일단 눈을 뜨기만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굴이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양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킨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양식법이 개발된 덕에 멸종의 위험은 없다고 봐도 좋다.

대략 10년 전만 해도 굴이라면 일단 생굴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감돌고 있는 노로바이러스의 악령이 사람들의 섭식 습관까지 바꿔놓고 있다. 굴의 유통기간이 대개는 한겨울인데다 바닷물에서 사는 생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요즘 어지간한 용기로는 생굴을 먹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생산 지역에 따라 어디 산 굴은 괜찮고, 어디 산 굴은 문제가 많다고도 하지만 분명한 근거는 없다. 먹는 사람이 조심할 수밖에.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아무튼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굴을 사랑해 왔기 때문에 서해와 남해 쪽으로 유명한 굴 산지가 한둘이 아니다. 국내산 굴의 80%를 생산한다는 통영이 있고, 근 몇 년 사이 굴구이 타운으로 유명해진 천북(보령)이 있고, 백종원 대표도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다는 강굴의 산지 서산이 있다. 그런데도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은 고흥을 고집했다.

굴은 본래 재료 자체가 맛이 좋기 때문에 요리법이랄게 별로 없다. 전국 어디서나 쪄 먹고, 구워 먹고, 전 부쳐 먹고, 국 끓여 먹는 정도다. 그런데 다른 지방에는 없고 고흥에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피굴이라는 마법 같은 음식이다.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피굴이 뭔지 궁금하시겠지만 일단 먼저 할 일이 많다. 고흥에 내렸으면 읍내 어시장을 한번 훑어보고 남성리 해변 쪽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고흥 금광수산에서 운영하는 굴 전문 양식장. 통영에 가도 마찬가지지만 고흥 사람들 역시 자기네 굴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크기와 맛에서 전국 어떤 굴보다도 낫다는 것인데, 물은 맑지만 수심이 얕아 굴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먹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석화굴에 직접 칼을 대고 까 보면 씨알이 확실히 굵다. 그 자리에서 건져 깐 굴을 고흥식으로 참기름에 찍어 먹다 보면 좀 더 강한 맛을 원하게 된다.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굴. 인터넷 캡처

금광수산 마당에는 드럼통을 절반으로 쪼개 만든 굴 구이용 전문 화덕과 철근(?)으로 만든 전문 석쇠가 있다. 팔뚝만한 장작으로 불을 피운 뒤, 석쇠 위에 석화를 쏟아붓는다. 주의할 것은 익어가는 굴이 뱉는 침(?). 열이 강렬해지면 굴은 살짝 입을 벌리면서 뜨거운 진액을 뱉어낸다. 눈에 맞으면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굴 직화구이 전문점에서는 물안경 같은 고글을 나눠주기도 하지만, 역시 굴을 구울 때는 앉아서 굽는 것보다 멀찍이 서서 익어가는 굴을 바라보는 것이 이상적이다. 야외의 굴 화덕 앞에서 두꺼운 장갑을 끼고, 영하의 찬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굴을 까먹는 것은 진정한 겨울의 미식이다.

적당히 구워진 굴 껍데기를 까 보면 안에서 진한 굴 국물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 알맹이를 먹기 전에 국물을 입에 따라 넣어 본다. 향기로운 바다의 고소함이 온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그다음 잘 익은 알맹이를 씹는다. 취향에 따라 레몬즙, 간장, 초장, 타바스코 소스, 삼발 소스, 무엇을 곁들여도 어울리지만 사실 직화로 껍질째 구운 굴에는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그냥 껍질을 까고 입에 넣으면 추위도, 걱정도 사라진다. 아, 혹시 주위에 소주나 청주, 화이트와인이 없다면 약간 덜 행복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굴을 구울 때 아주 살짝 구워 불기가 있을까 말까 한 상태가 가장 맛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백종원의 사계’에서는 웰던에 가까운 굴을 한번 드셔 보실 것을 추천한다. 굴 알맹이의 가장자리가 가뭇가뭇하게 타들어가기 직전, 가운데는 촉촉하고 주위는 쫄깃한 상태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 굴구이는 새로운 맛의 세계에 진입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종원 대표도 “바싹 구운 게 더 맛있는 것 같다”며 감탄한 맛이다. 굴에서도 짜릿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혀로 확인할 수 있다.

굴구이가 기대 이상의 감동이었다고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정작 고흥까지 온 목적인 피굴이 아직 남아 있다. 피굴은 특정한 굴의 종류가 아니라 굴로 만든 고흥식 냉국을 말한다. 일단 석화를 껍질째 흐르는 물에 잘 씻은 다음, 그대로 삶는다. 껍질에서도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반드시 껍질째 끓여야 한다. 살짝 끓여 굴은 건져내고, 국물은 식히면서 불순물을 가라앉힌 다음 고운 천으로 걸러 낸다. 건져낸 굴을 까서 그릇에 담고, 차게 식힌 국물을 부은 뒤 실고추 등 고명을 약간 얹고 참기름 몇 방울로 마무리.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기름진 음식과 강한 양념으로 미각을 잃은 사람들은 첫 숟가락에는 무슨 맛인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모금째, 세 모금째 국물을 마셔 보고 나면 어느새 그릇을 들고 국물을 후루룩후루룩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절로 국물을 타고 입안으로 밀려드는 굴 건더기를 씹으면, 굴속에서 터져 나오는 달콤한 즙이 시원하고 고소한 국물과 뒤섞이며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해산물이라지만 비린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참기 힘든 감칠맛이 그만이다. “해장으로 먹을 걸 그랬어.” 백종원 대표의 아쉬움 섞인 한마디.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사실 고흥 사람들에게 피굴은 식당보다는 집에서 해 먹는 걸로 더 익숙한 음식이다. 오래전부터고흥 어머니들은 전날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들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굴을 삶고 피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거북한 속으로 잠을 설쳤더라도, 아침 밥상에 피굴 한 사발이 놓여 있으면 바로 원기를 회복한다는 궁극의 해장국이다. 조리법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아 고흥 사람 중에 피굴 만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오래 걸리고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식당에서 만들어 놓고 팔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고흥에 오는 외지인들이 피굴 맛을 보려면, 미리 식당에 부탁해 놓는 것이 좋다.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전남 고흥 피굴. 인터넷 캡처

이렇게 권하는데도 고흥까지 가서 피굴을 아니 먹고 그냥 돌아오는 사람은 없을 듯. 피굴과 싱싱한 고흥 해산물로 한 상 든든하게 차려 먹은 다음엔 소록도 앞바다나 외나로도 앞바다의 용바위길을 산책하고 나면 제대로 고흥 구경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단, 한번 그러고 나면 집에 돌아온 뒤에도 최소 일주일 동안은 잔잔하고 깨끗한 남해 바다의 잔물결이 눈앞에서 어른어른할 것이다.  입안에서 맴도는 피굴의 상큼한 뒷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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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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