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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北 '철도기동미사일연대'의 기원…美 남북전쟁 때 '열차砲'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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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열차에서 쏘아올린 탄도미사일. [뉴스 1]

북한의 열차에서 쏘아올린 탄도미사일. [뉴스 1]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이어 쏘아 올리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특이한 발사시스템 하나가 눈에 띕니다.

 바로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건데요. 북한은 지난해 9월 15일에 이어 지난 14일에도 열차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습니다. 북한은 이 부대를 '철도기동 미사일연대'라고 호칭했는데요.

 당시 북한이 공개한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열차는 3량짜리로 기관차와 TEL(이동식 차량발사대), 그리고 통제실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열차 미사일을 일반 열차처럼 위장해서 운용하면 탐지하기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옛 소련, 핵 미사일 쏘는 열차 운용 

 사실 열차 미사일은 옛 소련이 개발해 실전배치했던 핵 열차 '몰로데츠'가 먼저입니다. 소련은 3기씩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12대의 핵 열차를 1987년부터 실전배치해 1990년대 초반까지 운용한 거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발사시스템보다 뛰어난 기동성과 은폐성을 활용한 건데요.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2003~2008년 사이 모두 폐기됐다고 합니다. 5년 전쯤 러시아가 핵 열차를 다시 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경제난 등으로 중단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옛 소련이 운영했던 핵 열차 '몰로데츠'. [출처 위키백과]

옛 소련이 운영했던 핵 열차 '몰로데츠'. [출처 위키백과]

 소련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했던 미국도 1980년대부터 지상배치형 핵 미사일을 열차에 실어 전국 각지에 숨기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예산 부족에 시달린 데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등의 영향으로 중단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열차를 단순한 수송수단이 아니라 대포 등을 탑재해 공격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언제일까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1860년대 초반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처음 '열차 포(砲)'가 등장했다는 게 정설로 여겨집니다.

 남북전쟁 때 남군이 '열차 포' 첫선

 당시 남군이 함포를 덮개가 없는 화차(무개화차)에 적재해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대포를 옮기던 수송수단에서 대포를 장착한 '열차 포( Railway gun, Railroad gun)'로 변신한 순간입니다. 이에 북군도 열차 포를 고안해 맞섰다고 하는데요.

 이후 열차 포의 개념은 유럽으로도 전해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이 거대한 열차 포를 제작해 속속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열차 포. [출처 위키백과]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열차 포. [출처 위키백과]

 사정거리가 길고 대형 포탄을 사용하는 함포를 개조해서 탑재한 이들 열차 포는 그야말로 막강한 화력을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공군력이 빈약해 장거리 폭격전을 펼치기 어려웠던 점이 열차 포의 존재감을 더 높여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적지 않은 열차 포가 동원됐지만, 그 위력은 상당히 반감됐다는 평가인데요. 무엇보다 폭격기 성능이 좋아지면서 열차 포보다 훨씬 먼 장거리 타격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구스타프, 이동과 배치에 한 달 걸려

 또 열차 포는 철길이 온전한 곳에서만 활용 가능한데 상대편 공군의 철도 폭격 등으로 인해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열차 포 사상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독일의 '구스타프 포'가 등장한 건 1940년대 초반인데요. 800㎜에 달하는 엄청난 구경에다 무게만 1350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덩치였습니다.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 포. [출처 위키백과]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 포. [출처 위키백과]

 웬만한 성인보다 큰 포탄을 수십㎞ 씩 날릴 수 있는 위력을 자랑했지만, 너무 큰 덩치 탓에 활용도는 상당히 낮았다고 하는데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포를 작전지역에 배치하려면 포를 분해해서 수십 량의 열차에 나눠서 옮겨야 했습니다.

 또 목적지에 도착해서 포를 사격대형으로 정렬하려면 진지를 구축하고 별도의 철도를 더 깐 뒤 조립을 해야 했는데요. 이 기간만 대략 한 달 이상 걸린 데다 대포 운용병력(250여명) 외에 시설 구축을 위해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추가로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열차 포, 2차 대전 이후 모습 감춰   

 이 때문에 구스타프 포가 실전에서 활약한 건 1942년 벌어진 세바스토폴 전투밖에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공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다양한 무기의 등장으로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이들 열차 포는 사실상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후 대포 대신 탄도미사일을 장착한 러시아의 핵 열차가 명맥을 유지했고, 최근엔 북한의 열차 미사일이 이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북한군이 열차에서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이 열차에서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북한의 열차 미사일은 얼마나 위력적일까요. 우선 북한이 열차 미사일을 개발한 건 내부적으로 도로보다 철도 사정이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북한의 철도는 총연장이 5300㎞가량으로 4000㎞대 초반인 우리보다 깁니다. 전철화율도 우리가 70%대인 것에 비해 80%대로 더 높습니다.

 철도 낡아 장거리 이동에 제한    

 이러한 철도망을 잘 활용해 은밀하게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면 대단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낡고 부실한 철도 상황이 장애물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은 노후한 철도 시설 때문에 여객열차의 속도가 시속 30㎞대에 불과한 데다 고위층이 탄 특별열차도 시속 40㎞대 그칠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같은 상황은 2018년 실시된 남북철도 공동조사에서도 여실히 확인됐습니다.

북한 지역 경의선 철도에 놓인 교량의 침목 상태. [출처 국회]

북한 지역 경의선 철도에 놓인 교량의 침목 상태. [출처 국회]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철로가 너무 낡은 데다 특히 교량 상태는 심하게 부실해서 무사히 조사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북한 열차 미사일의 운용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일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북한·대륙철도 전문가인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은 "기관차와 화차의 자체 무게에다 발사대, 미사일 무게 등을 합치면 중량이 상당할 것"이라며 "북한의 철도가 이 무게를 견디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합니다.

 선제타격용으론 여전히 위협적 

 3량 한 편성을 기준으로 따지면 총 중량이 200t 안팎일 거란 추정입니다. 참고로 러시아가 운영했던 핵 열차에 실린 미사일만 한 발당 무게가 100t이었다고 합니다.

 80%에 달하는 전철화율이 말해주듯 곳곳에 깔린 전차선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발사대를 세우고 미사일을 쏘려면 전차선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열차. [연합뉴스]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열차. [연합뉴스]

 실제로 북한에서 시험발사 때 주변 전차선을 상당수 제거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른 열차의 운행에는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셈인데요

 이렇게 보면 북한 열차 미사일의 폭넓은 운용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부지불식 간에 선제공격을 해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텐데요.

 이재훈 동아시아철도연구원장은 "평소 열차 운행이 적으면서 선로를 새로 보강했고, 인근에 터널이 있는 곳 등에 배치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군 정보당국에서 이런 지역을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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