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초 통화엔 '지지직'만…열차에 11m 끌려간 그날 무슨일이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1.22 05:00

업데이트 2022.01.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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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 치여 의식불명에 빠진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의사 말로는 깨어나도 사고 당시를 기억 못 할 가능성이 높답니다.”

백경서의 갱상도 허스토리

경북 경주 불국사역에서 지난해 12월 22일 40대 여성이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지점. 피해 여성은 열차에 치인 뒤 11m가량 끌려 갔다. [사진 피해자 가족]

경북 경주 불국사역에서 지난해 12월 22일 40대 여성이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지점. 피해 여성은 열차에 치인 뒤 11m가량 끌려 갔다. [사진 피해자 가족]

지난달 22일 경주 불국사역에서 건널목을 건너다 열차에 치인 40대 여성의 남편 이모(48)씨가 한 말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지점을 비추는 폐쇄회로TV(CCTV)도 없고, 당시 역무원도 건널목에 있지 않았다”며 “수사도 한 달째 진행하고 있는데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도대체 한 달 전 그날, 이씨의 아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료 전화받은 아내…“지지직”하고 끊겨

이씨의 진술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해보면 사고 당시 상황은 이렇다. 사고가 난 날 저녁 이씨의 아내 전모(47)씨는 근무지인 경주에서 야근 후 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울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불국사역에 오후 9시 54분에 진입해 1분 뒤 출발하는 무궁화호 마지막 열차를 타야 했던 상황이었다.

전씨는 기차가 도착하기 약 5분 전 불국사역에 도착해 평소처럼 건널목을 지나 기차를 타려고 했다. 불국사역의 구조상 이 건널목을 건너야 승강장에 도달해 열차를 탈 수 있다.

그때 전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씨의 회사 동료였다. 전씨는 “여보세요”라고 답했고, 동료는 업무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전씨는 이후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동료의 휴대전화에선 “지지직”하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그 동료는 “갑자기 (전씨의) 말이 없었다”며 “사고가 난 지는 몰랐다”고 사고 후 남편에게 말했다. 동료와의 31초간 통화가 사고가 나기 전 마지막 행적이 됐다.

따라서 남편 이씨 등은 전씨가 당시 전화를 받으며 이동하다가 건널목 끝 지점에서 열차에 받힌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건널목에는 따로 안전바가 설치돼 있지 않아 사고 당시 전씨는 11m가량 열차에 끌려갔다고 한다. 당시 건널목에는 역무원이 없었고, 사고 현장을 비추는 CCTV도 없었다.

경북 경주 불국사역에서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사고가 일어난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사진 피해자 가족]

경북 경주 불국사역에서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사고가 일어난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사진 피해자 가족]

전씨는 사고 후 울산대병원에서 응급조치 후 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로 실려갔다. 병원에서 왼쪽 하반신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후 아직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담당의는 “운이 좋아도 수개월이 걸려야 의식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남편 이씨는 “열차가 도착 예정 시각보다 일찍 왔고, 평소와는 다른 선로로 진입해 사고가 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열차가 3분가량 일찍 도착했는데 건널목이 있는 선로로 왔고,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났다”며 “아내가 해당 열차를 한 두번 탄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이씨는 “주변이 매우 어두웠고 건널목 주변에 나무가 식재돼 있어 다가오는 열차를 보기 어려웠다”고도 주장했다.

다시 찾은 현장…건널목엔 안전장치 없어

사고가 발생한 건널목에는 안전바 등의 장치가 없다. 대신 '일단 정지'라는 팻말이 있다. [피해자 가족]

사고가 발생한 건널목에는 안전바 등의 장치가 없다. 대신 '일단 정지'라는 팻말이 있다. [피해자 가족]

이씨는 “사고 3일 뒤 너무 답답해서 현장에 가봤다”며 “건널목에서 휴대전화 앱을 통해 조도(照度)를 관찰해보니 ‘0’으로 주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건널목을 건너야 승강장에 다다를 수 있는데 건널목에는 ‘일단정지 좌우확인 후 통과’라는 팻말만 붙어있어 황당했다”고 덧붙였다.

현장 방문 당시 이씨는 사고 현장에서 목격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 시간대에 매일 불국사역으로 출퇴근한다는 목격자는 “당시 사고 지점에서 1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어두컴컴해서 잘 안 보였다”며 “갑자기 경적이 울리며 열차가 멈췄고, 역무원이 나오길래 그때야 사고가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그 시간쯤엔 늘 3명 정도가 열차를 탄다고도 했다.

이씨는 “역무원은 당시 열차 진입을 지휘하기 위해 역사 내에 있었다고 한다”며 “현재 전국에 불국사역과 같은 역에 몇 개나 있는데 이런 식으로 관리한다면 아내와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국사역 폐역…코레일 “수사 협조 중”

경북 경주 불국사역은 지난해 12월 28일 폐역됐다. 사진=백경서 기자

경북 경주 불국사역은 지난해 12월 28일 폐역됐다. 사진=백경서 기자

불국사역은 사고 6일 뒤인 지난달 28일 폐역됐다. 동해남부선·중앙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면서 역사 문을 닫았다. 취재진이 지난 19일 찾은 불국사역에서는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굳게 닫혀있는 대합실 문 앞에는 피해자 가족이 붙인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전단만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불국사역을 운영했던 코레일 측은 “불국사역 건널목은 차단봉 설치 및 직원 안내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며 “해당역은 근무 직원이 2명인데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1명씩 근무한다. 직원은 당시 탑승객들이 건널목을 건너 승강장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한 뒤 열차 신호취급을 위해 역무실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사고현장을 비추는 CCTV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철도안전법에 따라 영상기록장치 설치대상은 승강장, 대합실, 승강 설비이며, 건널목은 설치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레일 관계자는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도공사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사고조사 및 조치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방철도경찰대는 “현재 사건을 면밀히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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