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었던 文의 편지, 땅에 버렸다…19살 소년 분노의 기록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1.22 05:00

업데이트 2022.01.2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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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대통령 편지 반환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가족들이 18일 오전 청와대로 향하는 통행로 앞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았던 편지와 청와대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인용 판결문을 내려놨다. 연합뉴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가족들이 18일 오전 청와대로 향하는 통행로 앞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았던 편지와 청와대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인용 판결문을 내려놨다. 연합뉴스

대한민국과 지도자를 상징하는 봉황 문장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서해 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이 반납한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10월 열아홉 살이던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다.

이씨의 아들은 지난 18일 “대통령님의 편지는 주적인 북한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었다”며 이를 돌려보냈다. 경찰에 막힌 유족들은 이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할 수조차 없어 편지를 청와대 앞길 위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10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된 이모씨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10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된 이모씨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연합뉴스

유족의 분노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기록하고, 또 기억하는 사람이다. 유족의 분노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새 잊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이씨의 아들이 문 대통령의 편지를 “거짓말”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2020년 9월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세 가지의 의문점이 나온다.

이씨 생존 6시간, 정부 뭘 했나 

이씨의 실종이 파악된 건 9월 21일 오전 11시30분, 북한 단속정이 이씨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군이 알게 된 건 이튿날인 9월 22일 오후 3시30분이다. 약 3시간 뒤인 저녁 6시36분 이런 사실이 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된다.

그리고 다시 약 3시간 뒤인 밤 9시40분 북한군 총기가 불을 뿜었다. 밤 10시30분에는 시신을 불태워 훼손했다는 첩보까지 청와대에 보고가 됐다.

의문점 하나.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이 적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북한군이 이씨에게 총기를 발사하기까지 여섯 시간 동안 정부는 뭘 했나. 처음 서면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의 판단은 무엇이었나.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이모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뉴스1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이모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뉴스1

청와대는 첩보 입수 2시간 반 뒤인 9월 23일 새벽 1시~2시30분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은 뒤인 오전 8시30분 문 대통령에게 이를 대면 보고했다.

의문점 둘. 청와대가 이씨가 살해된 사실을 인지한 뒤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까지 10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청와대는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었다지만, 다른 사안도 아니고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살해된 뒤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었다. 100% 확인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1%의 확률만 있어도 대통령은 알아야 했지 않나.

유엔 연설 수정, 왜 고려도 안했나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진행 중이던 9월 23일 새벽 1시26분~1시42분 문 대통령은 유엔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위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달라”고 했다. 졸지에 자국민이 북한군이 쏜 총에 희생되는 와중에 유엔에서 대북 관여와 종전선언을 열심히 외친 지도자가 됐다.

의문점 셋. 청와대는 왜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 수정이나 순서 변경을 고려하지 않았는가.

사전 녹화라고는 해도 연설 순서를 바꿔 시간을 버는 걸 고려할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한다는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북한군 피격으로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부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북한군 피격으로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부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당연하다.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문 대통령뿐이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취침 중이었다.

이는 청와대 참모들이 애초에 우리 국민이 북한의 만행에 희생됐을 ‘가능성’ 정도로는 유엔 연설을 손댈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국민 보호 의무와 직결될 수 있는 근본적 인식의 문제다.

이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은 이런 세 가지 의문점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이씨가 북측 수역에서 생존해있는 동안 정부가 이씨를 살리기 위해 무슨 조치를 했는지, 이후에는 피살과 관련한 대응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법원 역시 이를 허가했다.

법원도 허가한 정보공개 묶은 靑 

하지만 청와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올 5월 문 대통령이 퇴임하면 해당 기록들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 대통령 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묶어둘 수 있다.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까지가 이씨의 아들이 문 대통령의 약속을 “거짓말”로 부르게 된 이유다. “무엇이 두려워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냐”고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반인륜적 행위”라며 길길이 뛰더니(2020년 9월 24일 청와대 입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 한마디에 확 달라진 정부 태도다.

2020년 9월 25일 북한이 전해온 통지문과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을 발표하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스1

2020년 9월 25일 북한이 전해온 통지문과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을 발표하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스1

북한은 9월 25일 통지문을 보내왔다. 이씨가 수상한 행동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장황한 설명, 이는 중앙이 아닌 ‘단속정장의 결심’이었다는 면피성 해명 뒤에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가 있었다.

“대단히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모든 게 달라졌다. 9월 27일 오후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뒤 청와대는 “북측의 신속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발표했다.

김정은 사과 한마디에 ‘피살’→‘사망’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한다”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사흘 2시간 10분이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한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규탄도 “공동조사를 요청한다”는 부탁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피살’은 ‘사망’으로 둔갑했다. 청와대는 9월 24일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사과 뒤인 9월 29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결과물 발표에서는 “서해 상에서 ‘사망’한 우리 국민”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총에 맞아 숨진 뒤 시신은 불태워졌는데, 북한조차 통지문에서 ‘사살’이라고 썼는데, 우리 정부는 그냥 ‘사망’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쓰는 표현이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이모씨의 유족과 법률대리인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던 중 경찰에 막혔다. 연합뉴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이모씨의 유족과 법률대리인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던 중 경찰에 막혔다. 연합뉴스

일단 오늘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끝이 아니다. 정부가 이씨를 월북자로 만든 과정, 정상끼리 친서를 주고받고 통신선을 다시 열면서도 국민의 희생은 따지지 않는 까닭…. 쌓아갈 기록은 아직 많다. 기록해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

중동 순방 중이던 문 대통령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씨의 아들은 “제 분노를 기억하라”고 했다.

기억한다.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기만하려는 사람은 절대 기억하려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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