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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하루키 단편을 3시간 영화로 엮었다…"이 신비로운 연기"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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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진 트리플픽쳐스]

상영 시간이 179분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개봉한지 꼭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작지만 확실한 흥행 몰이 중입니다. 원작은 30쪽 가량의 동명 단편소설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작품이죠.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는 무라카미의 단편과,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작품 ‘바냐 아저씨’ 등을 씨줄 날줄로 엮어냈습니다. 각본도 직접 쓰는 하마구치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지난해엔 프랑스 칸느 국제영화제 각본상, 이달엔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었고, 3월에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유력 후보로도 거론됩니다. 왜인지를 기사체로는 잘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이 긴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또 보고 싶습니다. 저는 영화 전문기자도 못 돼고, 관련 콘텐트들은 이미 중앙일보의 훌륭한 관련 전문가들이 훌륭히 분석해놓았습니다(기사 하단 관련기사 링크 참고하세요). 피플팀에 있는 저는, 하마구치 감독이 궁금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지난해 칸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직후입니다. EPA=연합뉴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지난해 칸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직후입니다. EPA=연합뉴스

알고보니 3시간 러닝타임은 하마구치 감독에겐 유난스러운 길이가 아니었습니다. 전작 ‘해피아워’(2015)는 328분, 5시간 하고도 30분 가까이 되는군요. 그가 만든 영화의 길이가 죄다 비상식적인 건 아닙니다. ‘아사코’(2018)의 러닝타임은 120분으로 지극히 상식적이죠. 그런데 하마구치 감독에겐 배우의 심지를 흔들어놓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사코’의 주연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東出昌大)와 카라타 에리카(唐田えりか)는 영화 줄거리와 똑같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졌죠.

영화 '아사코' 한 장면. [사진 이수C&E]

영화 '아사코' 한 장면. [사진 이수C&E]

히가시데는 배우 겸 모델 와타나베 안(杏)과 결혼한 유부남, 카라타는 당시 미성년이었습니다. 역에 몰입한 나머지 현실에서까지 과몰입을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당시 일본에선 나왔습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원래 부산을 배경으로 하려 했으나 팬데믹으로 히로시마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원래 부산을 배경으로 하려 했으나 팬데믹으로 히로시마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 극장에서 진행된 한국인 출연 배우들의 상영 후 간담회에서, 이유나 역을 맡은 배우 박유림 씨는 이런 요지의 말을 하더군요. “소냐 역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 눈빛을 보는데 너무 맑은 거에요. (중략) 저는 저를 못 믿는 사람이었는데, 감독님의 ‘마음대로 해보세요, 괜찮아요’라는 디렉션 덕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배우의 잠재력과 감정을 지긋이, 꾸준히 또 확실히 끌어내주는 능력이 하마구치 감독에겐 있는 듯 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그의 일종의 페르소나인 듯한 연극 감독 겸 배우 카후쿠(家福)가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지금 무언가가 일어났다”고 칭찬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 아닐까요. 그가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한 말을 그대로 옮겨옵니다. 지난달 20일 게재된 기사입니다.

“연기는 신비롭다고 생각해요. 연기라는 건 만들어진 것 또는 허구인데도, 연기가 훌륭한 경우엔 허구 그 이상의 것이 되면서 그가 진짜가 아닌 무언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됩니다. 영화라는 것 자체는 무언가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것인데, 연기라는 것은 허구를 진짜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드라이브 마이 카'의 팬입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마구치 감독과 대담 중인 장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봉준호 감독도 '드라이브 마이 카'의 팬입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마구치 감독과 대담 중인 장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하마구치 감독은 LA타임스 기자가 (딱 봐도 이 영화의 매니어입니다) “대사에 상대를 꿰뚫는 힘이 있는데, 고통스러울 정도”라며 그 의도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 문화에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은 흔하지 않죠. 일본인들은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 영화에서 매우 솔직하고도 직접적인 대사를 등장인물들이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고통스럽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꼭 필요한 일입니다. 언뜻 보기에 괜찮은 인생, 또는 나아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그려내기 위해선 말이죠. 인생에선, 당신이 무엇인가 좋은 것을 성취를 해냈다고 하더라도 항상 고통이 수반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게 됐다고 해보죠. 그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열려 있는 겁니다. (사랑과 상실은) 항상 세트로 오지요. 당신이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을 얻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도 잃을 수도 있죠. 저는 더 나은 삶이라는 게 단순히 더 낫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항상 고통이 함께 옵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중 박유림 배우의 열연.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西島秀俊).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진 트리플픽쳐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와 체호프의 원작을 토대로 했지만 그 원작을 벗어나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하마구치 감독이 더랩이라는 영화 전문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무라카미는 영화 시사회엔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신 자택 근처 개봉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곤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어떤 부분이 내가 쓴 소설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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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여러 번 오지만, 그 중 하나는 박유림 배우가 수어로 연기한 ‘바냐 아저씨’의 소냐의 대사입니다. 사는 게 고통인 여러분들께 그대로 전하며 마칩니다.

“우리 힘을 내서 살아가요. 이 길고 긴 낮과 밤을 쉼 없이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내리는 시련을 우리 꾹 참고 살아가요. 지금도, 늙어서도, 한시도 쉬지 말고 남을 위해 일해요.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죽는 거에요. 저 세상에 가면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던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얼마나 슬픈 일생을 보냈던가, 그것을 모조리 말씀드려요. 그러면 하느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거에요. 그때, 우리에게는 밝고 아름답고 멋진 생활이 펼쳐질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지금의 불행한 생활을 미소를 띠며 돌이켜 보고, 그리고 우리는 편히 쉬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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