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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률 曰] 1호가 될 순 없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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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30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지난해 8월 막을 내린 JTBC 예능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들이 ‘1호 개그맨 이혼 커플’이 되지 않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일상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 유독 개그맨 커플 중 ‘이혼 1호’가 생기지 않은 이유를 리얼한 결혼생활로 보여주는 색다른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부부들이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이혼) 1호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재계도 ‘1호가 될 순 없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개그맨 부부들과는 달리 ‘이혼’이 아닌 ‘처벌’ 걱정이다.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27일 시행
처벌 아닌 사고 예방 걱정부터

건설·철강·기계·화학 등 분야 기업의 긴장감이 높다. 특히 건설업의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기준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을 집계하면 190곳이 수사 대상이다. 이 가운데 109곳이 건설사다.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는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은 뺀 수치다. 올해 법 적용 대상인 50억원 이상 건설 현장과 50인 이상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약 5만 곳에 이른다.

건설업이 떨고 있는 건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탓도 크다. 안전사고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1호’로 기록되면 사고와 직결된 손실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타격 등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피하려는 듯 대다수 대형 건설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인 27일부터 이른 설 연휴에 들어간다. 29일부터인 설 휴무를 27일로 앞당기고, 현장 안전 점검을 한다. 대우건설·DL이앤씨는 27일부터 현장 작업을 중단하고 설 연휴에 들어가기로 했다. 포스코건설은 27~28일 휴무를 권장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27일을 ‘현장 환경의 날’로 정해 공사 현장에 최소한의 인력만 남길 방침이다. 롯데건설·DL이앤씨 등은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2일 이후에도 이틀 더 쉬기로 했다. 공기 단축 등을 내세워 명절 연휴 전후에 작업 속도를 높이는 전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사고 여파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때 더욱 엄격한 처벌 기준이 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재계는 과잉 규제를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김앤장 법률사무소, 코스닥협회와 공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D-7 최종 체크 포인트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관련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의 안전관리 담당자 10명 중 8명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의 애로사항으로는 모호한 법 조항에 따른 해석의 어려움(43.2%),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25.7%), 행정·경제적 부담(21.6%), 처벌 불안에 따른 사업 위축(8.1%) 등을 꼽았다.

재계의 우려도 이해할 만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법은 없다. 과도한 규제라도 과거의 나쁜 관행을 일거에 몰아내려면 진통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외환위기 직후가 그랬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고 불만을 터뜨릴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828명으로, 전년(882명)보다 54명 줄어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였지만 목표(700명초반)에는 못 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를 더욱 줄일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의 말마따나 “법에 따른 처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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