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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서영의 별별영어] 블레쓔(Bless you)!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2호 31면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블레쓔(Bless you)!” 오래전 미국에서 들었던 이 구절에 대한 의문을 최근에야 풀었습니다. 블레쓔는 재채기할 때마다 들은 말인데요, 미국인들은 누가 재채기를 하면 반 박자도 쉬지 않고 재빨리 이렇게 말해 주곤 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낯선 사람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닫히려는 문을 잡아 주어 신기했어요. 실제로 미국식 예절의 기본은 서로를 되도록 평등하고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남의 재채기에까지 리액션을 해 주다니 놀라웠어요. 이 말을 안 하면 큰일 난다는 듯 꼭 했죠.

무슨 말이지? 놀리는 건가? 재채기를 흉내 내나?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은 “Thanks”라고 답하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상대방이 “Bless you”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May God bless you”를 줄인 것으로,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하라’는 뜻이래요.

이 말이 제게 마치 재채기 소리처럼 들린 이유는 bless의 /s/와 you의 /y/소리가 빠르게 말할 때 합쳐져 입천장소리인 [ʃ]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레스 유’보다는 ‘블레쓔’처럼 들리죠. 우리말의 ‘굳이’가 ‘구지’로 발음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흔히 “Nice to meet you”와 “I miss you”의 끝부분이 ‘츄’와 ‘쓔’처럼 발음되는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대부분 “Bless you”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 정도로 알고 있지만, 기원은 다양합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 시대에 초기 증상이 재채기라고 믿었대요. 그래서 교황이 축복을 빌어 준 일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재채기할 때 심장이 멎거나 악마가 들어갈 수 있다는 미신이 있어 이를 막으려고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정작 콜록콜록 기침을 하게 되면 이 말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상하고 야박하다 싶었죠. 재채기(sneeze)엔 덕담하면서 기침(cough)은 기피하다니요!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재채기에만 축복을 빌며 호들갑 떠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재채기 정도라면 얼마든지 건강을 기원해 줄 수 있죠. 하지만 기침하는 단계라면 덕담이고 뭐고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독한 바이러스를 나눠 갖게 되면 큰일이니까요. 의문은 풀렸지만 직접 겪어 알게 되다니 슬픕니다.

부디 코로나가 재채기 몇 번으로 끝나서 “블레쓔”라고 말하고 “땡큐”라고 답하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길어지는 코로나 터널 속에서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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