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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순이와 콜순이…노동의 인류학 보고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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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21면

사람입니다,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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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 지음
창비

이문열의 1987년 단편소설 ‘구로아리랑’의 배경은 구로공단이다. 노동운동을 한다는 가짜 대학생에게 속았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홀로 서는 여공을 다뤘다. 소설은 “자꾸 공순이, 공순이, 캐샇지말어예...”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구로공단을 돌아가게 한 건 이른바 ‘공순이’로 불린 여공이었다. 오늘날 수출 대국 한국은, 많이 쓰는 비유적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뼈를 갈아 넣어’ 세운 탑이다.

서울의 대표적 공업지대였던 이 지역은 어느 순간 ‘공(업)단(지)’에서 ‘디지털단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 것처럼. 구로디지털단지에선 누가 무슨 일을 할까.

2020년 발생한 콜센터 집담감염은 상담사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뉴스1]

2020년 발생한 콜센터 집담감염은 상담사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뉴스1]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3월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콜센터가 위치한 건물 9~11층에서 9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직원 가족 34명도 감염됐다. 그중 한 명이 사망했는데, 서울 지역 첫 사망자였다. 세상 이목이 콜센터가 있던 이곳으로 쏠렸다. 예전 구로공단을 돌아가게 한 게 여공이었던 것처럼,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구로디지털단지를 돌아가게 하는 건 콜센터 상담사였다. 공원을 ‘공순이’로 불렀던 것처럼, 콜센터 상담자도 ‘콜순이’라는 비하성 명칭으로 자타가 부른다. 국내에 얼마나 많은 콜센터 상담사가 있을까. 2016년 기준 공식 통계는 40만명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20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책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와 여기서 일하는 상담사를 다룬 인류학 보고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저자가 콜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흡연 문제였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 2012년 처음 현장을 방문했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구로디지털단지 콜센터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왜 콜센터 상담사들은 흡연율이 높을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자는 콜센터의 수많은 문제점과 마주한다. 세상에 알려진 대표적 문제라면 ‘감정노동’을 들 수 있다. 저자가 찾아내 알려주는 문제를 보면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관리자의 감시와 친절 강요, 성과 경쟁으로 돌아가는 운영시스템 등 문제는 도처에 있다. 저자는 이를 ‘총체적 노동 통제’라고 표현했다.

인류학 연구 방법론에 따라 많은 상담원을 면접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절망적인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도전기’ 장에서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행동을 통해 좀 더 나은 근무환경을 만들어나간 사례를 소개한다. 두통,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 손실, 근골격계 통증 등 직업병에 시달리던 상담사들이 자발적 동호회 활동(몸펴기생활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는 얘기도 전한다. 상담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연대하면 사용자는 또다시 새로운 통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연구가 책으로 엮어져 콜센터의 현실을 전하고 시민들의 공감대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떠올린 소설이 있다. 2018년 나온 소설가 김의경의 『콜센터』(광화문글방)다. 자신이 실제 상담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 얘기를 소설로 썼다. 이 책에서도 소설 일부를 인용했다. 저자는 책에 노래도 한 곡 소개한다. 래퍼 제리케이의 2016년 앨범 ‘감정노동’에 수록된 역시 ‘콜센터’라는 곡이다.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노래도 가사를 짚어가면 들어보면 이 책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읽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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