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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고 섬세하게, 위선과 모순의 탐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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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21면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소설가 은희경의 신작을 100배 즐기는 방법의 하나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견줘보는 것이다. 가령 지금까지 펴낸 그의 소설 제목들만 늘어놔도 무언가를 짐작하게 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타인에게 말 걸기’ ‘비밀과 거짓말’ ‘그것은 꿈이었을까’. 이런 것들 말이다. 요컨대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은 아니다. 적어도 타인과 소통을 꿈꾼다. 적당히 때가 탄 나는 그런 만큼 세속적이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새 소설집의 제목이 단순히 의미 없는 동어반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야금야금 읽고 나면 심증은 굳어진다. 동어반복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자기 선언이었다. 새 소설집 제목 말이다. 장미는 장미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장미다운 이름은 장미라는 것이다.

소설집은 희미한 연작 형태다. 연작이라고 쳐주기 민망할 정도로 4편 단편 간의 연결고리가 허약하다. 그러니까 한 단편의 인물이 다른 단편에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뉴욕 맨해튼이라는 배경 공간이 모래알들을 한데 묶는 역력한 시멘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소설집의 장미들은, 그러니까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방인들이다. 교포도 아니고 뜨내기 한국인들이니까 당연하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지인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어가 서툴거나(‘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 이름은 장미’), 갑작스러운 청력저하에 시달리거나(‘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취했을 때만 이야기꾼이 되는 중년의 소통 장애(‘아가씨 유정도 하지’)가 걸림돌들이다.

은희경은 단순히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그리려 한 걸까. 그렇겠거니 짐작한다면 그를 1도 모르는 것이다. 그보다는 훨씬 미묘하고 그러면서도 해결 어려운 문제를 건드렸다. 가령 뿌리 깊은 인종의 벽 같은 것 말이다. 작품의 결이 섬세하다 보니,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양파껍질 같은 향취가 느껴진다.

그래도 우열을 가리라면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와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이 인상적이다. 자기 안의 모순과 관계의 위선을 탐문하는 은희경 소설이 또 한 번 경계를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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