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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도 티파니도 ‘2500원짜리’ 그림에 꽂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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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18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이모티콘 만드는 명품 브랜드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가 국내 인기 캐릭터 ‘옥철이’와 협업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가 국내 인기 캐릭터 ‘옥철이’와 협업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새해 첫날 여러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 끝에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의 이모티콘 하나씩을 붙여 보냈다. ‘티파니블루’라고 알려진 하늘색 상자 뚜껑이 열리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튀어나오는 애니메이션 이모티콘이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 대신 붙인 건데 “ㅎㅎ” “ㅋㅋㅋ” “엄지 척” 답들이 이어진 걸 보면 보낸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차린 것 같다.

감정 표현 풍부한 캐릭터 선호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국내 일러스트 작가 설찌와 협업한 홀리데이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국내 일러스트 작가 설찌와 협업한 홀리데이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현대의 ‘포노사피엔스(휴대폰+호모 사피엔스.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모티콘은 제3의 언어다. 한글 자음과 모음, 알파벳,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해 만든 ‘그림말(이모티콘)’ 하나면 긴 문장 대신 웃음·눈물·분노·우울·행복 등의 감정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제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절한 이모티콘 사용은 모바일 매너이자 ‘국룰’이 됐다.

덕분에 ‘이모티콘 작가(일러스트레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고, 10여 개의 디지털 그림 세트가 2500원에 판매되면서 이모티콘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됐다. 카카오가 ‘카카오 이모티콘’ 출시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모티콘 개별 누적 숫자는 30만 개에 이른다. 창작자 및 이모티콘 산업 종사자 수는 약 1만명. 10년 동안 누적된 수익 규모는 7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1억원 이상의 누적 매출을 달성한 이모티콘은 1392개. 10억원 이상의 누적 매출을 달성한 이모티콘도 92개나 된다.

샴페인 브랜드 모엣 샹동.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샴페인 브랜드 모엣 샹동.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흥미로운 점은 제품 하나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이 ‘2500원짜리’ 이모티콘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1~2년 사이 펜디·보테가베네타·디올·프라다·미우미우·구찌 등의 패션 브랜드는 물론이고, 피아제·티파니 같은 보석 브랜드, 모엣 샹동 같은 샴페인 브랜드에서 이모티콘을 자체 제작해 배포했다. “있는 놈이 더한다”고 양심 없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다. 이들 명품 브랜드의 이모티콘은 브랜드 채널을 카카오 친구에 추가하면 공짜로 받을 수 있다. 단, 사용기한이 30일로 한정돼 있다. 카카오 이모티콘 사업부의 이유리 매니저는 “광고 홍보용이기 때문에 한시적 이벤트성 외 B2C 판매는 하지 못한다”고 했다. 카카오를 통해 배포는 가능하지만 판매는 안 된다는 것.

주얼리 브랜드 피아제.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주얼리 브랜드 피아제.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딱 한 달만 사용할 수 있는 시한부 조건임을 알면서도 명품 브랜드들이 자신들만의 이모티콘 제작에 열심인 이유는 새로운(미래의) 고객인 M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다. 펜디코리아의 신혜영 이사는 “친숙하고 재치 있는 콘텐트를 선호하는 MZ세대에 다가가기 위한 기획”이라고 했다. 펜디는 2019년 아티스트 오스카 왕이 디자인한 캐릭터 ‘펜디디’를 이용해 2020년 3월, 2021년 11월에 이모티콘을 제작·배포했다. 신 이사는 “한 달 동안 카카오 채널 유입자 중 2039세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며 “11월 24일 출시 후 30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123%의 친구 수 증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확장된 브랜드 채널은 신제품 발매 등을 알리는 홍보 창구가 된다.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또 흥미로운 것은 이들 명품 브랜드의 이모티콘들이 대부분 국내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국내 이용자가 특히 많은 이모티콘 생태계를 간파한 한국 홍보·마케팅팀이 주제와 내용을 기획하면, 해외 본사에서 로고와 디자인 소스(제품의 색상·형태 등)를 보내고, 국내 작가들이 자신들의 인기 캐릭터에 이 소스들을 입혀 그림을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펜디.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펜디.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지난해 프라다와 미우미우 이모티콘을 각각 한 번씩 제작한 바 있는 프라다코리아 관계자는 “국내 이모티콘 이용자들은 귀엽거나 재밌는 동시에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한 캐릭터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국내 작가들과 협업하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우미우의 이모티콘은 국내 인기 캐릭터 ‘옥철이’를 창작한 조효정 작가가 만들었다. 밀라노 본사가 어떤 의상과 가방을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모델이 걸친 실물 사진들을 보내왔고, 조 작가는 옥철이 캐릭터에 해당 소스를 입히고 16개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그렸다. 이후 조 작가의 에이전시 스튜디오릴리 팀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완성시켰다. 스튜디오릴리의 윤남경 대표는 “옥철이 캐릭터는 3040세대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인데 그보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미우미우에서 협업 의뢰가 들어와 처음에는 의아했다”며 “이모티콘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 홍보팀의 의도가 이해됐다”고 했다. 워킹우먼의 삶과 감정을 따뜻하게 표현해온 옥철이는 캐릭터 중에서 패셔니스타로 유명하다. 모양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상하의에 각각 들어간 무늬와 색감 조합이 예사롭지 않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캐릭터, 브랜드가 추구하는 개성, MZ세대의 취향이 잘 맞아떨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프라다.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프라다. 각 브랜드가 제작한 이모티콘. [사진 각 브랜드]

지난해 두 차례나 이모티콘을 제작한 티파니 역시 한국 작가와 협업했다. 특히 지난해 연말 제작한 홀리데이 이모티콘은 브랜드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대표작 ‘바위 위에 앉은 새(Bird on a Rock)’를 모티브로 국내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인 설찌와 협업했다. 티파니 관계자는 “브랜드의 창의력과 설찌 작가의 해석이 잘 맞아떨어져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미국 본사에서도 너무 좋아해서 현재는 중국 등 글로벌에서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K컬처에 K일러스트까지 합세한 것이다.

주얼리 브랜드 피아제 역시 국내 작가와 협업했는데 캐릭터보다는 주얼리라는 정체성에 집중해 주목받았다. 목걸이·귀걸이·반지·팔찌 등이 메인 제품인 브랜드답게 손동작에 포커스를 맞춘 이모티콘이다. 피아제 홍보팀 박혜진 과장은 “대화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손동작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본사와 이용자 모두 반응이 좋아서 새로운 이모티콘 제작을 기획 중”이라고 했다.

다운로드 받은 후 언팔 ‘먹튀’도

명품 브랜드의 이모티콘 제작을 두고 투자비용 대비 효율성에 의문을 갖는 의견도 있다. 카카오를 통해 이모티콘을 유통하려면 브랜드는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한 사람이 다운받을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 문제는 일단 채널에 가입해 이모티콘을 다운로드 받은 후 언팔하는 ‘먹튀’ 이용자도 꽤 있다는 점이다. 이러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게 되는 꼴이다. 그럼에도 명품 브랜드가 이모티콘 제작에 열심인 이유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데 이만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딱 한 달만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은 아쉬움인 동시에 희소가치를 높이고 다음 시리즈 이모티콘을 기다리게 하는 요소다.

마케팅·광고 기획 전문가인 이근상 KS’IDEA 대표는 “명품 브랜드들의 타깃과 마인드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아우디 차를 홈쇼핑에서 팔자는 아이디어는 말도 안 되는 기획이었지만 이젠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일”이라며 “브랜드 가치는 유지하되 디지털 창구를 통해 젊은 소비자들과 소통하려는 명품 브랜들의 전략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마케팅·광고 트렌드 중 하나가 ‘힘빼기’인데 명품 브랜드의 이모티콘 제작도 이런 전략”이라며 “‘명품 브랜드가 이런 소소한 것도 잘 만드네’라는 소리가 나오는 자체가 젊은 층에선 흥미로운 뉴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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