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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추락 나스닥, 긴축 공포에 ‘잠 못 드는 서학개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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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14면

뉴욕증시 급락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주가가 떨어지자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주가가 떨어지자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증시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인 이른바 ‘서학개미’ 박모(35)씨는 최근 아침에 눈 뜨기가 겁난다. 뉴욕 증시가 연일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공포에 뉴욕 증시는 최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박씨는 “잠들기 직전에 나스닥이 1.5% 이상 오른 걸 보고 누웠는데, 일어나보니 하락 마감했다”고 말했다.

서학개미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0.89% 내린 3만4715.39에 마감했다. 전날 나스닥이 지난 고점보다 10% 넘게 내린 가운데 이날은 다우존스지수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으로 200일 이동평균선보다 낮은 수준에서 마감했다. 나스닥(-1.3%)과 S&P500(-1.1%)도 각각 하락했다. 다우존스지수는 5거래일, 나스닥과 S&P500은 3거래일 연속 내림세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변동성 지수(VIX)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VIX는 전장보다 1.74포인트(7.3%) 상승한 25.59를 기록했다.

종목별로는 엔비디아(-3.66%)와 아마존닷컴(-2.96%)의 낙폭이 컸다. 애플도 1.03% 하락했다. 넷플릭스는 이날 시간외 거래에서 20%가량 급락했다. 장 마감 후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4분기 신규 가입자가 828만명이라고 밝히면서다. 시장 전망치(839만명)를 밑돈 수치에 매도가 이어지며, 508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쳤던 주가가 405달러 수준까지 밀렸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은 서학개미가 최근 한 달간 많이 사들인 종목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일 기준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는 엔비디아 3억3195만 달러(약 395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애플도 2억5180만 달러(약 3000억원)어치 순매수를 기록했다. 순매수 1위는 나스닥100지수의 상승률보다 3배의 수익을 내도록 설계된 TQQQ(Proshares Ultrapro QQQ) ETF다. 서학개미는 최근 한 달 이 상품에 3억3779만 달러(약 4032억원)를 투자했다. 3배 레버리지는 지수가 1% 상승하면 3배의 수익을 얻는 대신 반대로 1% 하락할 경우 손해도 3% 발생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날 장 초반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나스닥 지수가 2% 넘게 오르는 등 3대 지수가 일제히 상승세였다. 그러나 오후부터 상승세가 꺾이며 장 마감 무렵에는 급락으로 돌아섰다. 주가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연준의 조기 긴축 공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의 힘과 최근 물가 상승 속도를 고려할 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시사했듯 지금 필요한 지원을 다시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연준의 조기 긴축 행보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날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장중 다시 연 1.86%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장기 국채금리가 오르면 위험자산인 주식 선호 심리가 약해진다. 해리스 파이낸셜 그룹의 제이미 콕스는 블룸버그통신에 “시장이 당분간 관망세를 보일 것”이라며 “연준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큰 움직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어떤 움직임에도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발언도 장 후반 주가를 끌어내렸다. 실업 지표도 좋지 않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주 실업보험 청구 건수(28만6000건)는 전주보다 5만5000건 늘며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 전망치(22만5000건)를 웃돈 수치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미국 경제에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문제는 추가 하락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수석 시장 전략가 마이크 윌슨은 20일 보고서에서 “나스닥을 포함해 미국의 주요 지수가 지금보다 10% 이상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윌슨은 “기업 실적이 이미 둔화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으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고점 대비 이미 10% 이상 주가가 하락하며 조정장에 들어간 나스닥의 경우 추가로 10% 이상 내려가면 공식적으로 베어마켓(전고점 대비 20% 하락)에 진입한다.

미국의 닷컴 버블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했던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도 2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증시에 심각한 수퍼 버블이 생겼다”며 “수퍼 버블이 터지면 S&P500 지수가 향후 45% 가까이 폭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버블이 무너지기 직전 증시는 평균적인 강세장의 속도보다 주가가 2~3배 빠르게 치솟는다”면서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2020년 3월 코로나19 폭락장 당시 저점에서 100%나 뛰어오른 것이 이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그랜섬은 미국 뉴욕증시에 대한 투자를 피하고 일본과 같은 저렴한 선진국시장이나 신흥시장의 가치주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HSBC도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 주식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한편, 뉴욕 증시의 연이은 하락세에 국내 증시도 고전하고 있다. 21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0.99%(28.39포인트) 내린 2834.29에 마감했다. 2020년 12월 29일(2820.5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211억원, 6438억원 팔아치우며 주가 하락 압력을 더했다. 반면 개인은 홀로 8969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도 1.65%(15.85포인트) 하락한 942.85에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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