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불심, 정청래 또 문전박대…민주당 "더 얻어 맞아야"

중앙일보

입력 2022.01.21 17:27

업데이트 2022.01.21 18:45

“사찰을 사기꾼으로 호도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모욕감을 줬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불교계 인사들이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쏟아낸 말이다. 전국에서 모인 조계종 소속 승려와 불교신자 5000여명이 참석한 행사였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사찰이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에,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대 불교계의 격한 반발을 불렀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행사엔 발언 당사자인 정 의원이 연단에 올라 공개 사과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 시작 50분 전 조계종은 정 의원 측에 “오지 말라, 사죄의 마음이 있다면 따로 하시라”고 전해왔다고 한다. 차량으로 이동 중이던 정 의원은 이내 조계사에 도착했지만, 후문에서 불교계 인사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정 의원은 지난해 11월 말에도 조계사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송영길 대표와 민주당 내 불교계 창구인 전통문화발전특별위원장 김영배 의원, 국회 불교신자 모임 정각회의 회장인 이원욱 의원 등은 일단 행사장까지는 들어섰다. 하지만 연단에 올라 승려들에게 직접 사죄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승려들이 고성을 내지르며 격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21일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비유해 정부를 비판했다. BTN방송 캡처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21일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비유해 정부를 비판했다. BTN방송 캡처

행사 도중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죄 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자 일부 승려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꺼라”며 삿대질을 했다. 황 장관의 영상이 도중에 꺼지자 일부 승려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문체부가 천주교·개신교와 함께 ‘캐럴 활성화 캠페인’(지난해 12월 1~25일)을 기획했다가 불교계 반발 때문에 접는 등 그간 현 정부와 불교계 사이엔 갈등이 잦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도 불공정했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며 “전통문화를 보존·계승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 종교 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부추기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비유해 정부를 비판한 것인데 민주당에선 “불교계가 야당처럼 느껴진다”(한 보좌관)는 말도 나왔다.

국회로 돌아온 정청래 “다시 사과”

두 번째 문전박대를 당한 정 의원은 국회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그는 국회 소통관에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불교계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전통문화가 꽃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는 “지난주 부산 해운정사에서 큰 종정 진제스님을 만났다. ‘지혜로운 산’이 되라며 미천한 저에게 ‘지산’이라는 호를 주셨다”며 몸을 낮췄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후문에서 입장을 거부당하자 사찰을 떠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후문에서 입장을 거부당하자 사찰을 떠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정 의원은 전날까지만 해도 “전국승려대회 참석은 미정”이라며 거리를 둬왔다. 대신 자진 탈당을 권유한 당과 불교계를 향해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정 의원은 지난 18일 ‘이핵관’(이재명 후보 핵심 관계자)으로부터 자진 탈당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는 페이스북 글을 올려 ‘내부 총질’ 논란까지 낳았다. 그의 지지자들은 지난 20일 조계사 앞에서 불교계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루 만에 고개를 숙인 정 의원에 대해 민주당 선대위 위원장급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와 척을 지는 건 무리수 중의 무리수”라며 “사죄는 해야하지 않겠냐는 조언이 정 의원에게 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석열 “불교계 상황 충분히 이해”

 문재인 정부의 종교편향을 비판해 온 조계종이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했다. 전국 주요 사찰의 주지를 비롯한 승려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김현동 기자

문재인 정부의 종교편향을 비판해 온 조계종이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했다. 전국 주요 사찰의 주지를 비롯한 승려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김현동 기자

3·9 대선을 불과 47일 앞두고 성난 불심이 누그러지지 않자 민주당 선대위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 선대위 인사는 “지도부가 사찰을 더 찾으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 노력할 것”이라며 “결국 우리가 더 얻어 맞아야 화난 불심이 반(反)이재명 표심으로 연결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사찰 소유의 토지에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것을 방지하는 조세특례제한법(윤후덕 의원 발의)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불교계의 반발에 동조하고 나섰다. 윤 후보는 21일 기자들과 만나 “(정 의원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당의 중요한 인물로서 발언 내용 자체보다도 종교를 대하는 태도가 맞지 않다고 (불교계가) 격분하고 계신다”며 “불교계의 이런 상황은 국민 한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폴리컴의 박동원 대표는 “윤 후보와 이 후보가 박빙을 이루면서 양쪽 모두 ‘종교계에 밉보이면 표를 갈아먹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생기고 있다”며 “종교계를 향해선 최대한 몸을 낮추면서 표를 잃지 않는 방어전략을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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