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정치풍향 | 단일화, 과연 윤석열·안철수만의 전유물일까

중앙일보

입력 2022.01.21 14:38

업데이트 2022.01.22 09:04

‘박스권’ 갇힌 이재명, 통 큰 양보로 安과 연대 제의할 수도

지금은 안철수의 시간, 민주당과 손잡으면 역전승, 국민의힘과 손잡으면 승부에 쐐기

정권 교체 명분에 국민의힘과 공조했던 安, ‘김건희 리스크’ 커지면 尹과 갈라설 수도

1997년 11월 3일 DJP 연합 서명식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악수하고 있다.

1997년 11월 3일 DJP 연합 서명식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악수하고 있다.

"저쪽(더불어민주당)과 손잡으면 역전승이고, 이쪽(국민의힘)과 손잡으면 승부에 쐐기를 박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대위에 몸담고 있는 한 관계자는 월간중앙과 전화 통화에서 대선후보 단일화 전망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 판세를 봤을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연대 없이 독자적 승리가 어렵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안 후보와 연대해야 승리가 보다 확실해질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최근 안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다. 1월 1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 37%, 윤 후보 31%, 안 후보 17%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가 17%를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단일화와 관련해 민주당은 철저히 투 트랙을 걷는다. 일단, 이재명 후보는 ‘자강(自强)’ 노선이다. 여당 후보가 먼저 단일화 카드를 꺼낼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안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깊이 생각 안 해봤다”(12월 26일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며 거리를 두고 있다. 반면 송영길 대표는 방송 인터뷰 등에서 안 후보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받던 사람”(1월 11일 MBC [뉴스외전])이라며 이·안 후보 연대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친문 일각에서 반발이 거셌지만, 송 대표는 끝내 이 발언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반대다. 안 후보와 구원(舊怨)이 깊은 이준석 대표는 단일화에 손사래를 치며 ‘독자 승리’를 외치고 있다. 이 대표는 1월 13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안 후보의) 완주 가능성이 있다”며 “(윤 후보가) 3자 구도, 4자 구도로도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이 대표와는 결이 다르다. 윤 후보는 1월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유권자인 국민께서 판단할 문제”라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돌아보면 단일화는 역대 대선에서도 최대 화두였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등이 대표적이다.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는 단일화가 승리의 원동력이 됐고, 2012년 대선 때는 승부를 뒤집을 정도의 파급력은 없었다.

단일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단일화 과정 자체가 지난(至難)한 데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2002년의 경우 정몽준 캠프에서 최초 협상을 제안한(11월 1일) 지 24일 만에 단일화가 성사(11월 25일)됐다. 불과 대선 24일 전에 단일화가 이뤄진 것이다. 윤 후보 쪽과 안 후보 쪽이 지금 당장 단일화 논의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시간은 최소 3주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는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초까지 지지율 3강 체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안 후보의 발언대로라면 단일화는 빨라야 2월 중순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단일화가 이뤄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양당이 합치면 누가 단일 후보가 되든 양당 모두 대선후보를 배출하지 못하는 ‘불임 정당’ 오명은 뒤집어쓸 일이 없게 된다. 또 양당이 한 몸이 되면 윤 후보로서는 중도 확장, 안 후보로서는 제1 야당에서 정치적 기반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尹·安, 당대당 합당 또는 국민참여 경선 가능성

후보 단일화가 제20대 3·9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여야 주요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후보 단일화가 제20대 3·9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여야 주요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야권 일각에서는 합당 대신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 경선 방식의 단일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 후보는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야권 후보 적합도 및 경쟁력을 조사해 합산하는 방법으로 단일화를 이뤘다. 시기는 후보자 등록일인 2월 13~14일 이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래야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현실적으로 단일화 논의 테이블에는 ‘공동정부’ 구상이 메뉴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단일화 경쟁에서 패한 후보도 최소한의 ‘실리’가 있어야 선거운동 과정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JP 연합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한 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국무총리직과 함께 내각 구성권의 절반을 행사했다.

‘공동정부’ 구상도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후보 단일화가 곧 공동정부를 전제로 하는 만큼 대선 전에 명확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단일화 논의가 늦어질수록 유권자들에게는 단일화가 ‘권력 나눠먹기’로 비칠 수 있다.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면 단일화 시너지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李, DJP 연합 때보다 더 많이 내줄 수 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후보가 윤 후보의 지지층을 잠식하며 15%의 벽을 뚫는다면 야권 단일화 요구가 더 높아질 것”이라며 “반대로 안 후보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떨어진다면 윤 후보는 굳이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독자적인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도 확실한 승리, 승부에 쐐기를 박고, 정권 교체를 원하는 모든 세력을 규합한다는 의미에서 안 후보와 연대하는 게 순리”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 이후 야권 공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차기 대선후보 단일화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의 후보 단일화는 불가능한 걸까? 그 가능성에 불씨를 지피는 인물이 송영길 민주당 대표다. 그는 일부 친문의 강력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안 후보의 단일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이 후보의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혔다. 이대로 가면 40%를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어쩌면 단일화는 윤 후보보다 이 후보에게 더 절실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의 주장대로 이 후보가 박스권에 갇혀 있는 건 사실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9~21일 조사에서 이 후보는 34%를 기록했다. 이어 31%(11월 16~18일)→36%(11월 30~12월 2일)→36%(12월 14~15일)→36%(2022년 1월 4~6일)→37%(2022년 1월 11~13일)로 두 달 가까이 거의 변동이 없다. “40%를 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 엄살만은 아닐 수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이·안 후보의 연대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연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1+1=2는 아닐 수 있다. 1월 14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후보 37%, 안 후보 17%로 나타났는데 두 사람이 연대(단일화)한다 하더라도 단일 후보의 지지율이 54%가 되긴 어려울 수 있다. 안 후보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민주당과 거리를 두며 ‘중도’를 외쳐왔다. 그런 안 후보이기에 만일 그가 민주당과 다시 손잡는다면 지지층 일부가 돌아설 수 있다.

윤석열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현재 안철수 지지층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이낙연 전 대표 지지층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면서 “안 후보가 이 후보와 손을 잡는다면 이 전 대표 지지층과 원래 중도층 가운데 일부가 안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 측에서 상상 이상의 ‘통 큰’ 양보와 함께 안 후보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도 있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DJP 연합 때보다 더 많은 걸 안 후보에게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안 후보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승부를 걸 때는 반드시 승부를 거는 이 후보의 스타일상 민주당 지지층만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게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DJP 연합 때보다 더 많은 걸 안 후보에게 내줄 수도 있을 것”이라며 “후보 단일화가 야권에만 해당하는 이슈일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그런데 법률가 출신이 많은 윤 후보 캠프는 너무 경직돼 있다 보니 정치적 상상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5%(한국갤럽 기준)에 머물던 안 후보는 국민의힘 윤석열-이준석 갈등 정국을 계기로 상승 국면을 맞았다. 한국갤럽 1월 4~6일 조사에서 15%를 돌파하더니 1월 11~13일 조사에서는 17%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윤 후보의 ‘동반 상승’이다. 1월 4~6일 조사에서 26%였던 윤 후보는 1월 11~13일 조사에서 31%로 반등했다. 윤석열-이준석 갈등이 결과적으로 범야권 지지율 파이를 키워준 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安의 선택은 정권 교체일까 시대 교체일까

2012년 12월 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군포시 산본역 중앙광장에서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와 함께 트리 장식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2년 12월 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군포시 산본역 중앙광장에서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와 함께 트리 장식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주당 핵심부에서도 이 점에 주목한다. 당 내분 사태를 일단 봉합한 윤 후보가 자력으로 반등한 데 이어 야권 단일 후보가 돼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면 이 후보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될 경우 이 후보 지지층 가운데 일부가 이동하는 것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신경이 거슬리는 부분이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안 후보의 지지율 고점은 15%일 것”(유인태 전 의원 1월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한국갤럽 조사에서 안 후보가 17%까지 올라섰다. 만일 안 후보의 상승세가 지속돼 그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면 그 파괴력은 윤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됐을 때보다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족 리스크’에 휩싸여 있는 윤 후보와 달리 안 후보는 별다른 공격거리가 없다. 이미 5년 전 대선 때 혹독한 검증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민주당이 제기했던 의혹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안 후보에게 ‘안초딩’,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 등의 프레임을 씌웠지만, ‘드루킹 공작’이 드러난 마당에 이 같은 주장은 더는 힘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범야권인 안 후보와 윤 후보의 단일화에 무게가 실리지만, 안 후보와 이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도 완전히 닫혀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부터 안 후보는 정권 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야권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제1야당, 그것도 대선후보가 치명적인 ‘가족 리스크’를 안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와 안 후보의 공통점 중 하나가 586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 만일 안 후보가 ‘평생 검사’인 윤 후보와 손을 잡는다면 정권 교체는 이룰지 모르겠으나, 시대 교체와는 더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며 “이 후보와 안 후보 모두 정권 교체를 넘어 정치 교체, 시대 교체를 외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 후보나 윤 후보 모두 독자적으로는 40%대 초반이 한계일 수 있다. 따라서 양쪽 모두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대선은 안철수 후보가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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