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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포스코 사망사고'때 옆에서는 '중대재해법' 특강 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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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일 최정우 포스코 회장(앞줄 왼쪽)이 최근 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포항제철소 원료부두 현장을 찾아 제철소 직원, 협력사 대표들과 현장 위험 요소에 대해 공유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일 최정우 포스코 회장(앞줄 왼쪽)이 최근 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포항제철소 원료부두 현장을 찾아 제철소 직원, 협력사 대표들과 현장 위험 요소에 대해 공유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한 날에 회사 측은 계열사 그룹장 등을 대상으로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특강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측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경영자 처벌을 걱정하느라 오히려 현장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주장했다.

21일 포스코에 따르면 전날 경북 포항 포스코인재창조원에서 포스코건설 등 계열사 그룹 조직장 등 안전관리자 20여 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특강을 진행했다. 포스코인재창조원은 신입사원 교육 등을 하는 곳이며,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도로로 8㎞가량 떨어져 있다.

이날 특강 내용은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설명과 대응방안 등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날 특강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 공지된 교육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권장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포스코에서는 30대 하청업체 직원이 근무 중 석탄을 나르는 중장비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포스코와 포항남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전 9시 47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3코크스공장에서 스팀배관 보온작업을 하던 용역사 직원 A씨(39)가 장입차와 충돌했다. 장입차는 쇳물 생산에 필요한 연료인 코크스를 오븐에 넣어주는 장치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10시 40분쯤 숨졌다.

노조 "경영자 처벌 걱정보다는 예방에 집중해야"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항지부 회원들이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포스코케미칼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노동부 포항지청에 사고 원인 조사와 안전보건진단에 노동자와 금속노조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항지부 회원들이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포스코케미칼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노동부 포항지청에 사고 원인 조사와 안전보건진단에 노동자와 금속노조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조 측은 “포스코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걱정에 휩싸여 법안의 취지인 중대재해 예방 노력에는 소홀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간부를 중심으로 포스코가 중대재해법 대응 방안을 교육하고 있던 그 시각, 노동자 A씨가 포항제철소로 출근한 지 보름 만에 사고를 당해서다.

원형일 전국금속노조 포스코지회장은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측에서 최근 정비 부서 등에 ‘일감을 줄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들었다”며 “법안 시행 초기에 일 양을 줄여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 1호’가 되는 걸 막자는 건데 황당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원들이 여기에 서명까지 했다고 들었다. 일을 줄이는 것보다 대대적으로 안전 체계를 정비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일주일여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산업현장에서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에서도 총 6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등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노동계에선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포스코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명에 달한다. 지난해 2월엔 포항제철소 원료부두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크레인을 정비하다 설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한달여 후인 3월 포스코케미칼 라임공장(생석회 소성공장)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나 노동자가 사망했다. 10월에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포스코플랜텍 직원이 덤프트럭과 충돌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해 2~4월 특별감독을 벌여 법 위반 사항 225건을 적발, 4억4000여만 원의 과태료를 매겼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포스코 노조는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포스코가 자회사로 전락하면 설비 투자 감소로 근로자의 안전과 근무 환경이 악화될 수 있어서다.

원형일 전국금속노조 포스코지회장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건 경영진이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겠다는 의미”라며 “최고 경영진은 홀딩스에서 경영·관리만 하고 실제 사고가 나면 현장에 있는 이른바 ‘제철소 바지사장’이 책임을 지는 거다. 안전 문제가 소홀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에 따르면 사업주·법인·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하거나 도급·용역·위탁한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일어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지난 2018년 작업 중이던 외주업체 근로자 4명이 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장. [연합뉴스]

지난 2018년 작업 중이던 외주업체 근로자 4명이 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장.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포스코와 하청업체를 상대로 안전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직후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해 “포항제철소 사고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인과 유가족께 애도를 표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재발방지 및 보상 등 후속 조치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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