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선 박범계… 중대재해 '낙하산 검사장' 없던 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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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외부 인사를 검사장으로 신규 임용하는 공모 절차를 중단했다. 중대재해 전문성 강화를 이유로 추진된 검사장 외부 공개모집에  ‘신종 알박기’, ‘낙하산 검사장’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공고 나흘 만에 철회한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右)과 김오수 검찰총장(左).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右)과 김오수 검찰총장(左). 뉴스1

검찰총장 직속 중대재해 자문기구 설치

21일 법무부·대검찰청에 따르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은 지난 20일 긴급 만찬 회동을 갖고 중대재해와 노동인권 전문 외부인사 발탁을 위한 대검 검사(검사장)급 신규 임용 절차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신 대검에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대재해 관련 검찰총장 직속 자문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기구는 ▶효율적 초동수사 방안 ▶실질적 양형 인자 발굴 ▶새로운 위험에 대한 법리 연구 개발 등을 맡고, 관련 권고 사항을 대검 ‘중대재해 수사지원추진단’(단장 박성진 대검 차장)에 전달하면 검토 후 시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사람의 회동엔 구자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배석했다.

검사장 외부 공모 논란은 박 장관이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공석인 대전고검·광주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승진 인사를 시사한 가운데 “중대재해 사건 관련 전문성 있는 검사를 발탁해 보고 싶다”고 말하며 시작됐다. 문제는 지난해 1월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오는 27일 시행)이 아직 시행되지 않은 데다 검사장 승진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법연수원 28~31기 중에도 중대재해 사건을 수사했거나 이와 관련한 논문 등 연구 실적이 있는 검사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었다. 검찰 안에서는 이례적인 정권 말 검사장 승진 인사와 특정 분야 전문성을 연결지은 데 대해 “검사장이 중대재해 전문성이 있으면 그 청의 전문성도 올라가느냐”(현직 차장검사)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외부 공모’를 공식화 했다. 지난 17일 외부인사를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노동인권 전문 검사장 신규 임용 공고를 냈다. 수사 지휘 라인에 있는 검사장 자리에 비(非) 검찰 출신 외부 인사를 보임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박 장관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특정 인사를 정권 말에 발탁하는 ‘알박기 인사’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반발이 나왔다.

김오수 반대에…박범계 ‘수용’ 

대검은 지난 18일 ‘중대재해 수사지원추진단’을 설치하며 맞불을 놨다. 추진단엔 이정현 대검 공공수사부장 휘하 중대산업재해팀, 김지용 대검 형사부장 휘하 중대시민재해팀을 두는 형태로 업무 분장을 마치기도 했다. 지난 19일엔 김오수 총장이 대검 부장회의를 거쳐 공식 반대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선 ▶외부인사 검사장 임용 선례를 만들면 향후 정치권 인사가 일선 수사를 지휘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고 ▶대검 감찰부장을 제외한 검사장에 대한 외부인사 공모는 검찰청법과 직제 규정상 법적 근거가 부족하단 내부 견해가 반영됐다고 한다. 박 장관은 전날까지 “수사의 전문성만 갖고 접근하면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며 관철 의사를 내비쳤지만, 결국 김 총장의 의견을 수용하며 한발 물러섰다.

법무부·대검은 노동인권 전문검사 양성에도 나서기로 합의했다. 특히 대검은 건설현장 생명띠 착용에 대한 특별 계도를 일정 기간 실시한 뒤 향후 이를 위반한 사건에 대해 엄정히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대검 측은 “법무부 장관이 강조한 중대재해에 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전문성 강화, 엄정 대응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검찰 업무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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