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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숨은 권력자, 대통령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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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부인 김혜경씨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 [중앙포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부인 김혜경씨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 [중앙포토]

“샤넬 넘버5는 구할 수 없었다오. 암시장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아내 베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미군 PX(매점)에서 1온스(28g)에 6달러를 주고 다른 종류를 몇 가지 구했고, 그게 샤넬 넘버5와 똑같다고 했소”라고도 했다. 일상인가 싶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인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 머물던 때였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스탈린 소련 수상과 독일과 패망이 확실한 일제에 대한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 유명한 포츠담 회담, 바로 그때였다.

정국 흔드는 대선 후보 배우자 #잘못 있지만 공격 수위 이례적 #배우자의 정치 공간 인정해야

 트루먼이 숭배했던 부인은 백악관에 애정이 없었다. ‘라스트 레이디’로 불릴 정도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려 했다. 기자에게 “당신은 날 알 필요가 없다. 난 대통령의 아내고 그의 딸의 어머니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부인도 남편과 집무실 서재에서 오후 11시까지 나란히 앉아 일했다. 트루먼이 정치와 관련된 모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부인의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대통령 부부도 부부다. 동시에 권력 동업자다. 배우자는 그러나 비공식 권력이다. 드러나지 않길 기대한다. 미 언론인 케이트 마튼은 그래서 퍼스트레이디를 ‘숨은 권력자’라고 표현했다. “공과 사를 혼합하는 일은 대통령 부부에겐 일종의 규칙이었다. 남편이 대통령이면 아내도 대통령이다. 대통령 아내들은 이런 생각을 숨기려고 매우 조심하지만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 ‘우리가 대통령이었을 때…’라고 바버라 부시는 몇 차례나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매우 고단하다. 피로감 못지않게 모멸감도 견뎌내야 한다. 어느 정도인가 궁금할 수 있다. 이회창의 부인 한인옥씨가 한 사례일 수 있겠다. 한때 ‘현모양처’(2000년대 전후엔 여전히 유효한 이미지였다)로 여겨졌던 그는 2002년 대선 무렵엔 ‘권력욕의 화신’이 됐다. 여당(민주당의 전신)이 두 아들의 병역 면제가 비리(김대업 사건)라고 공격했고, 한씨가 기양건설로부터 10억원(대선 후 허위로 판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무렵 민주당은 ‘한인옥 10억 수수, 온 국민은 분노한다’를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2002년 하반기 병풍 사건이 무혐의로 가닥 잡힌 뒤 한씨는 동료 의원 부인들 앞에서 억눌렀던 감정을 털어놓았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그 무렵 취재 노트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음해 소문에 위축됨. 요즘엔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함.” “외부 일정을 거의 취소. 의기소침한 건 아니라고 함.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라고 함.”

 지금은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후보에 대한 검증보다 후보 부인에 대한 공세가 더 집요하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인이 됐다는 이유로 알지 않아도 될 것까지 알게 됐다. 물론 그가 빌미를 제공한 탓이 크다. 부풀리거나 허위로 기재한 이력 논란에다 특정 성향의 매체 인물과 50여 번에 걸쳐 선 넘는 발언을 했다. 기가 찬 일이다. 그렇더라도 의원 시절 문재인 대통령도 찾았던 전시회를 연 기획자란 모습은 증발하고 ‘쥴리’였다가 ‘가짜 인생의 무속에 빠져 지내는 권력을 탐하는 여인’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도 ‘최순실’에 빗댈 정도였다. 일각에선 ‘원더건희’라고 환호한다. 비정상이다.

 사실 후보 부인에 대한 공세는 이중 타격이기도 하다. 부인뿐 아니라 그런 부인을 본 남편도 평정심을 잃곤 해서다. 한때 윤 후보가 부인의 사과를 막았다고 했던가.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괴이한 웃음소리도 듣게 됐다.

 결과적으론 우린 불가능한 걸 요구하게 됐다. 부인의 정치적 공간이 있는데도 없는 척하라고 말이다.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는 게 한 예일 것이다. 지속 가능한가.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