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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보다 거래 적어…‘은마 40% 폭락’ 재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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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얼어붙은 주택시장

주택시장 ‘거래 절벽’이 장기 집값 하락세를 낳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수준만큼 심하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주택시장 ‘거래 절벽’이 장기 집값 하락세를 낳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수준만큼 심하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빠르게 질주하던 자동차 계기판 바늘이 일제히 뚝 떨어졌다. 엔진 회전수(RPM), 연료 게이지, 속도계 말이다. 비행기로 말하면 곤두박질치는 모양새다. 연초 주택시장 상황이다. 정부는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했다. 일부에선 폭락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는 늦었고 타고 있던 사람도 떨어지기 전에 뛰어내려야 할까.

무엇보다 ‘거래 절벽’이 극심하다. 지난해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던 노원구 상계동 주공 아파트 2만9000여 가구에서 지난해 12월 거래량이 10건도 안 되고 새해 들어 20일까지 신고된 건수가 2건에 불과하다. 신고 기한 한 달을 고려하더라도 1월 거래 건수가 10건을 넘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월엔 148건이었다.

상계동 주공, 새해 들어 2건 신고
전국 집값 모두 하락세로 돌아서
서울 등 공급물량은 여전히 부족
대선주자 규제완화 공약도 변수

서울시에 따르면 계약일 기준으로 지난해 12월 거래 신고 건수가 1200건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12월 건수로 가장 적었던 금융위기 직후 2008년 12월(1500여건)보다 적다.

3년 만에 실거래가 연속 하락

가격도 상승세가 꺾인 데 이어 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 동향 선행지표로 꼽히는 아파트 실거래가 통계는 이미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수도권·서울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고 12월 잠정 통계도 마이너스로 집계됐다. 세 곳이 동시에 2개월 이상 연속 하락세를 보이기는 2018년 11월~2019년 4월 6개월간 이후 처음이다. 2018년 9월 고가주택을 겨냥한 종합부동산세·주택담보대출 강화 등을 담은 고강도 규제인 9·13대책 뒤였다.

시장 심리도 마찬가지다. 국토연구원이 조사하는 서울 주택매매 소비심리지수가 지난해 8월 148.9에서 지난해 12월 108.1로 4개월 새 40포인트 정도 떨어졌다. 정부는 상승기가 끝났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말 한 새해 부동산시장 안정방안 브리핑에서 “중장기적 추세적 하락국면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지난 19일 부동산시장점검 관계 장관 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부동산시장 가격이 하향 안정세로 속도 내는 모습이 확인된다”고 자신했다.

빠르게 떨어지는 주택시장 지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빠르게 떨어지는 주택시장 지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시장에서도 약세 예상이 나온다. 미국 하버드대 도시계획·부동산학 박사 출신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앞으로 2~3년간 대세 하락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을 지나면서 집값 동력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집값 상승세를 주도해온 30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듯 돈을 모아 주택 구입)에 힘이 빠졌다. 무섭게 오르는 금리와 모든 부채를 따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등으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고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새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에서 1.25%로 2.5배로 올렸다. 올해 한두 차례 더 올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앞서 2010~2011년 5차례 1.25%포인트 상향 조정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폭도 크다.

피부로 느끼는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예금은행 가중평균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지난해 8월 2.8%대에서 불과 3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3.51%로 0.6%포인트 뛰었다. 3.5%대는 박근혜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대출 규제를 푼 덕에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2014년 여름 수준이다. 올해 기준금리가 추가로 더 오르면 6%대까지 뛸 것이란 예상도 있다. 2010~2011년 연쇄적인 금리 인상은 2012년 서울 아파트값이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이 내린 데(-4.48%) 일조했다.

30대가 자금 동원에 무리수를 둬가며 영끌에 나선 이유가 공급 부족 불안이었다. 시세보다 저렴해 ‘로또’로 불리는 신규 분양 아파트는 청약가점이 낮아 엄두를 내기 어려워 기존 주택을 매수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급 과잉을 우려할 정도”라며 쏟아내는 공급 확대 밀어붙이기가 이들의 불안 심리를 달래고 있다. 사전청약 등 분양물량의 추첨 비중을 늘리며 30대에게 손짓하고 있다. 김보현 미드미네트웍스 대표는 “추첨 경쟁이 치열하긴 하겠지만 로또 당첨 꿈을 꾸고 기회라도 주어져 30대가 분양시장에서 숨통이라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끌’ 주도한 30대들 매수세 줄어

실제로 주택시장에서 30대가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매입자 연령별 분포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40%에 육박했던 30대 비율이 지난해 11월 33%로 내려갔다. 30대 영끌이 불거지기 시작한 2020년 6월 수준이다.

집값이 하락한다면 얼마나 내릴까. 김경민 교수는 “올해만 최대 20% 꺾일 것”이라고 했다. 20%만 내려도 집값이 코로나 초기인 2020년 여름 수준으로 내려간다.

정부와 김 교수가 말하는 중장기적 하락은 대표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값 약세가 중간에 반짝 상승세가 있긴 했지만 2008년 8월부터 2014년 7월까지 6년간 약세장을 이어갔다. 이 기간 8.6% 내리며 집값을 금융위기 1년 8개월 전인 2006년 말 수준으로 후퇴시켰다.

단지에 따라 체감 하락 폭은 훨씬 더 컸다.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 84㎡가 2007년 13억8500만원까지 거래됐다가 2013년 7억9000만원까지 40% 넘게 떨어졌다.

하지만 중장기적 하락세나 폭락을 우려하기는 이르다. 현재의 거래 절벽은 상당한 주택정책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 선거가 한몫하고 있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세제·대출 등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규제 강화보다 완화 추세가 예상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현 정부가 성역처럼 건드리지 못한 재건축 규제 완화까지 들고 나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 부동산이 이슈로 떠오르고 선거 이후 주택정책이 요동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시장에 ‘두고 보자’는 관망세가 짙다”고 말했다. 대선과 6월 지방선거의 개발 공약도 지역적으로 집값 상승 기대감을 부추길 수 있다.

서울 주택 20만 가구 절대 부족

그동안 집값 급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공급 부족이 해결되지 않았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집을 많이 지었다고 하지만 실제론 기본적인 수요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7~2020년 4년간 전국에 새로 지어진 연평균 주택 수가 55만 가구로 이전 2005~2016년 연평균(39만 가구)보다 40% 늘었다. 하지만 주택 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주택보급률(일반가구수 대비 주택수 비율)은 뒷걸음질 쳤다. 주택 부족이 심한 서울이 가장 많이 후퇴했다. 2020년 기준으로 94.9%로 주택이 일반가구보다 20만 가구 적다. 94.9%는 거의 10년 전 수준(2012년 94.8%)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집보다 재건축 등으로 멸실되거나 일반가구수가 늘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주택이 더 많아 보급률이 내려갔다”며 “서울 주택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신축 물량이 증가 가구와 멸실 주택수와 비슷할 것으로 보여 서울 주택 부족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공급 확대 계획이 요란하지만 지어져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복합단지 등 주택 사업도 강남 등 인기 지역에선 조용하고 주변부 정도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기대하는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감소는 부는 바람일 뿐이고 집값 안정은 공급 문제를 해결해 불씨를 잡아야 한다. 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가 다음 정부의 규제 완화를 만나면 되살아날 수 있다. 바람의 방향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투매에 가까울 정도로 매물이 급증해야 집값이 뚝 내려가는데 현재 미분양이 2000년대 초·중반 집값 급등 때보다 적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국 1만4000가구다. 지난해 못지않은 ‘불장’이었던 2006년에도 7만 가구 쌓여 있었고 금융위기 직전엔 10만 가구가 넘었다.

30대 영끌을 비롯해 현 정부에서 집을 산 사람이 다주택자보다 무주택자나 집을 옮기려는 1주택자가 많았다. 실수요여서 집값 변동에 따라 쉽게 팔지 않는다. 다주택자도 그동안 워낙 많이 올라 웬만큼 폭락하지 않는 한 버티거나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유리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점점 더 불확실성만 확실한 세상이다. 판단을 흐리게 하는 소음과 앞날을 보여주는 신호를 분간하기 어렵고 소음이 신호로, 신호가 소음으로 변하기도 한다. 올해는 호랑이해다. 호랑이의 포효하는 입이나 강력한 발보다 쫑긋 세운 귀와 날카로운 눈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