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대통령 권력이 블랙홀…임기 초반 개헌 논의 시작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2.01.21 00:29

업데이트 2022.01.2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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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황식 전 총리(왼쪽)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황식 전 총리(왼쪽)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최악의 대선이자 최악의 후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미 최고의 대통령과 최고의 정부를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인물의 문제일까, 제도의 문제일까.
문재인 정부 이전 최장(最長) 총리였던 김황식 전 총리와 대표적 정치학자의 한 명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이를 두고 3시간 머리를 맞댔다. 김 전 총리는 최근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을 통해 독일정치의 저력을 그려냈다. 한국 사회, 특히 대선후보들에게 생각 거리를 던지고 싶어서였다.

역대 최악의 대선…한국 정치제도 한계 부각
독일처럼 연합정치 가능한 리더십·개헌 필요
김 전 총리 "내각제, 안 되면 총리 권한 강화"
박 교수 "득표율에 합당한 권한만 행사해야"

두 사람은 최고의 갈등, 최악의 대선을 보여주는 한국의 정치와 제도가 한계에 도달했고 결국 연합정치가 가능한 리더십과 헌법이 절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통령의 권력 독식이 블랙홀인데, 개헌을 블랙홀이라고 비판하는 담론은 어불성설”(박 교수)이란 진단도 나왔다. 마침 여야 대선후보들도 개헌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먼저 독일 얘기부터 했다.

▶박 교수=“전전까지 오래도록 독일은 높은 권력 독점과 강한 저항이 아니면,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라는 양자택일이 일반적이었다. 전후엔 그러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 연동형 비례제에 기반한 연합정치를 통해 국정의 안정성·전문성·지속성을 모두 달성하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김 전 총리=“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핵심이다. 어느 사회나 갈등은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는 게 정치인데 독일은 철저한 권력분립 위에 연립정부로 상징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하고 있다. 좌우를 대표하는 1·2당(사민당·기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연정만도 전후 네 번에 달한다.”

▶박=“이번 올라프 숄츠 내각이 25번째 내각인데 그간 모든 내각이 100% 연정이었다.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단독정부 수립이 가능한데도 연정을 수립했다. 1957년 기민·기사당은 과반(519석 중 270석)이었음에도 자민당(17석)과 연정했다. 놀랍다.”

▶김=“연정을 하면, 과반의 지지를 받는 세력이 집권하게 되어 정치 안정과 사회 통합이 이루어진다. 대연정의 경우엔 국민의 80%의 지지를 받는 집권당이 탄생한다. 정권교체가 돼도 연립을 통해 전 정부의 정책들이 이어진다. 소수파 정당이 정권에 참여해 소수의 목소리도 국정에 반영된다. 탈원전·모병제는 녹색당의 공약이었는데 기민당·사민당이 받아들였다. 경륜 있는 정치인을 양성해내는 효과도 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는 5~10% 지지를 받는 자민당의 당수로 20년 이상을 장관을 하면서 독일 통일의 주역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 연정은 얼핏 보면 불안정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큰 장점을 가진 제도이고 독일에선 이게 성공했다.”

김황식 전 총리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황식 전 총리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박=“전적으로 동의한다. 연합정치의 최고의 특장은 정당·인물별로 각각 전문 부문의 정책 반영을 통해 국가정책의 장기적 추구와 일관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선진 복지 국가들의 특징이다. 독일의 3대 업적 모두 연합정치의 산물이었다. 사회적 시장경제와 라인강의 기적은 기민당의 아데나워·에르하르트·키징거 총리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연합정부를 통해, 그리고 동방정책과 독일 통일은 사민당·기민당과 자민당의 연립 정부와 브란트·슈미트·겐셔·콜을 통해, 녹색·환경·기후 정책은 녹색당을 통해 절정의 성취를 보여주었다.”

▶김=“특히 독일 정치인들은 위국 헌신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또한 헌법 가치와 같은 본질적 문제에 대해선 철저히 원칙을 준수하고, 현실문제에 대해선 시대정신에 맞춰 실사구시의 융통성을 발휘했다.”

둘의 대화는 한국 현실로 돌아왔다. 박 교수는 “우리는 아주 극미한 득표 차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대권을 장악하고 누구는 어떤 정책도 반영시킬 수 없는 잘못된 승자독식의 정치가 지속해왔다”며 “권력과 정책의 완전 독점과 완전 배제의 관행을 혁파하지 않고는 갈등 완화나 국가안정, 정책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기민당도 이어받았다는 점을 거론하며 “남남 대화와 남남 타협 없이 남북 대화와 남북 공존을 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김=“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다르면 소통하고 대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버린다. 형식상 만나서 대화하더라도 자기 생각은 전혀 바꿀 생각 없는 사회 분위기가 됐는데, 원초적 책임은 결국 정치권이다.”

▶박=“결국 대권(大權)제도와 문화의 철폐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대통령의 불비례적 권력 독점이 연립과 연합을 불가능하게 하고 진영대결을 가져오는 요체다. 제도도 독점적인 데다 정치문화 역시 인물 위주여서, 못나도 자기 진영의 인물은 무조건 지지하고, 반대 진영의 인물은 잘나도 무조건 증오한다.”

▶김=“현 제도 안에서도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운영하면 성과를 거둘 수도 있겠지만 87년 헌법 체제 하에서 진행 과정을 보면 쉽지가 않다. 현실은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독점, 청와대의 비대화와 내각의 왜소화, 검증되지 않는 청와대 참모들에 의한 국정 지배, 편향적 인사로 인한 대선 과정에서 줄서기, 패배한 세력의 증오와 저항 등이 반복되고 사회통합은 깨지고 있다. 권력 분립에 의한 국정운영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한데 타개책으로서 개헌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을 위한 권력구조 개헌과 연동형 선거제(사표 방지, 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확보를 위한 선거 방식)를 도입하고 또 그 결과로 다당제로 나아가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김황식 전 총리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황식 전 총리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8일 독일정치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박=“국제조사에 따르면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종다수제(從多數制.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으면 당선자로 결정)보다는 비례대표제가, 대통령제보다는 의회책임제가 자유·인권·민주주의·평등·복지는 물론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압도적으로 좋다고 나온다. 제도 자체의 논쟁은 끝났다. 이런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합의의 문제다. 전후 독일은 총 66번, 매 2.75년에 한 번씩 개헌하면서도 대통령제보다도 훨씬 더 안정적인 총리 임기와 국정안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고, 국회의원도 거의 전부 개헌에 찬성하고, 국민의 찬성 여론도 매우 높은데 안 되고 있다. 잘못된 현실이다.”

▶김=“차기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개헌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의 공적(功績)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헌이 블랙홀이란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헌 논의를 국회와 국민에 맡겨놓고 정부는 자기 일을 해나가는 게, 국정운영에 대한 시비를 줄여 훨씬 바람직하고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김 전 총리는 내각제 쪽에 무게를 두었다.

▶김=“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는 안 된다는 거에 국민 의견이 일치하고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가 선택지에 올라와 있다. 국민 의식 속에선 내각제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게 현실인 것 같다. 저는 한두 사람이 끌고 가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의 의사를 결합해 정치하는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도자가 능력이 부족하고 국민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교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는데 그 길이 막혀있다. 그걸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가 내각제다. 다만 국민의 뜻을 모으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엄격하게 분장하고 총리 임명과 해임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박=“우리나라 대통령제가 실제로는 대통령제가 아닌 거에 빨리 눈떠야 한다. 정책결정권·인사권·예산권·법률안제출권·개헌안 발의권·감사권 등 어떤 제왕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 초과(超過) 대통령제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건 정책결정권과 인사권 정도다. 그것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철저하게 제약된다. 이제는 우리도 득표율에 합당한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 개헌안 발의권과 법률안 제출권을 폐지하고, 정책결정권은 국무회의와 공유하며, 감사권도 이양해야 한다. 총리를 의회에서 복수 추천하고 국무회의를 의결기구(현재 심의기구)화하고 장관 임명동의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국회·내각·장관이 각각 국정에 대해 함께 권한을 행사하고 함께 책임을 지는 연합의 정치가 가능하다.”

고정애 논설위원 ockham@joongang.co.kr

아데나워·이승만 선택은 차이 없었다
콘라트 아데나워와 이승만. 초대 총리, 초대 대통령이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다. 아데나워가 존경받는 총리라면 이 대통령은 논쟁적 인물이다. “아데나워 총리와 이 대통령이 핫라인을 개설해 놓고 상의하면서 정치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분이 놀랄 정도로 생각이 맞아 있다.” 김황식 전 총리의 말이다. 박명림 교수는 “미ㆍ소 냉전 심화 과정에서 사실상 아데나워와 이승만의 선택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은 미·소 냉전 심화 과정에서 분할점령과 독자정부를 받아들였고 미국(서방)을 택했다.
이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을 포용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 급진주의를 차단하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놓은 것도 아데나워의 사회적 시장경제과 유사하다. 박 교수는 “이승만(미국 기반의 독립운동세력)·김성수(자유주의적 보수주의 세력)·조봉암(한국적 사민주의 세력)의 연합은 국가형성 연합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개혁 연합이었다”며 “국제연구에서도 (토지개혁을 통해) 전후 식민지 경제구조를 가장 잘 혁파한 건 한국·대만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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