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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핵과 ICBM 재개하면 파국 맞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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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은, 핵실험· ICBM 모라토리엄 철회 시사

목에 칼 들어와도 침묵하는 한국 정부도 문제

북한이 시계를 2017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극초음속 미사일 등으로 릴레이 도발을 하더니, 급기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재개까지 시사했다. 네 차례 미사일 발사로 대남 타격 역량을 충분히 과시했으니, 이젠 미국까지 겨냥한 시위를 하겠다는 얘기다. 5년 전 북한의 고강도 도발과 갓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초래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정국 문턱에 선 분위기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한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잠정 중지 재가동’은 2018년 6월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언급한 핵실험과 ICBM의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철회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을 알린 시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직전,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하루 전이란 점에서 중국과 우크라이나 등에만 집중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겨눈 예의 ‘벼랑 끝 전술’임은 분명하다. 김정일 생일(80회, 2월 16일)과 김일성 생일(110회, 4월 15일)이나 3월 또는 4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맞춰 괌이나 알래스카까지 닿는 극초음속 미사일 실거리 사격, 고체형 ICBM, 군사위성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의 도발은 늘 데자뷔를 부른다. 2017년은 물론이고, 2012년엔 대선 2주 전 ICBM을 발사하고 대통령 취임 사흘 전 3차 핵실험을 했다. 무대는 식상하지만, 현실은 점차 뚜렷해진다. 북한이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을 종착지로 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소형 경량화된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거리 확보 등 전략무기 개발 방향과 극초음속 미사일, 수중 및 지상 발사 고체형 ICBM 등 5대 과제를 제시했다. 최근 보여준 수준은 목적지가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민의 굶주림을 딛고 무력 대국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지금이라도 북한은 핵을 업고 도발과 겁박으로 쌀과 고기를 얻겠다는 오판을 철회해야 한다. 자칫 북한 정권 자체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정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종전선언’만 되뇌고, 동맹 미국과는 전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대전환을 해야 하고, 여당도 “전쟁하자는 얘기냐”는 식의 거친 담론으로 현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어제 아침 라디오에 나와 대통령의 중동 3개국 순방 성과만 나열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얘긴 아예 하지 않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