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바이든 채찍 들자, 핵·ICBM 꺼낸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22.01.21 00:02

업데이트 2022.01.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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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그동안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라”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유예 철회 카드를 4년 만에 꺼내들었다. 이날 정치국 회의에서 발언하는 김 위원장.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그동안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라”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유예 철회 카드를 4년 만에 꺼내들었다. 이날 정치국 회의에서 발언하는 김 위원장. [뉴스1]

새해 들어 미사일 네 발을 발사하며 위기를 고조시킨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철회 카드를 꺼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그동안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노동신문 등이 20일 전했다. 극초음속 미사일 등 네 발의 미사일 발사가 예고편이었고, 한반도 군사 안보 상황 위협이라는 본게임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017년 9월과 11월, 각각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ICBM급) 미사일을 쏜 이후 관련 도발을 중단한 상태다. 이어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북한 매체는 이날 회의에서 언급한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전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의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대조선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했다”며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포치했다”고 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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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북한의 향후 행동과 관련해 지난해 1월 열린 8차 당대회를 주목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소형 경량화된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거리의 정교한 타격 능력 확보 등 전략무기 개발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에 극초음속 미사일과 수중·지상에서 발사하는 고체형 ICBM,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군사정찰위성, 무인정찰기 등 5대 핵심 과제도 내놨다.

북한은 지난 5일과 11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뒤 최종 시험발사를 마쳤다고 했다. 따라서 향후 행동과 관련해 괌이나 알래스카까지 닿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실거리 사격이나 고체형 ICBM, 군사위성 발사, 잠수함을 이용한 공격 능력 과시 등이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술핵 완성을 위해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공학 박사이자 육군 대령인 함형필 외교부 국방협력관은 “북한이 실전에서의 사용 가능성이 높은 전술핵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는 한반도 안보 지형에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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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순항미사일은 물론 곡사포로도 쏠 수 있다. 북한이 방사포와 전술핵을 섞어 쏘면 한국은 요격하기 힘들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부연구위원은 “과거 북한이 공개했던 미러볼형(2016년 3월 공개)·장구형(2017년 9월 공개) 핵탄두의 경우 크기·무게를 고려할 때 KN-23 등 신형 전술 유도무기에 탑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북한의 핵 능력을 신뢰성 있게 제시하려면 핵실험을 통해 소형화 기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군 소식통은 “마지막 핵실험 이후 5년이 넘었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정도 기술을 고도화시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미 전술핵 단계에 접어들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 올해 80주년)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올해 110주년)을 “성대히 경축”할 계획이다. 이런 기념일들을 고강도 도발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열병식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평양 미림비행장에 군 트럭이 오가고 인원들이 모이는 등 관련 움직임이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북한이 중국 입장을 고려해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2월 4~22일) 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자제하는 대신 열병식을 통해 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다탄두나 고체연료 엔진 체계 등은 적어도 10번의 실험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김일성 생일 110주년, 김정일 생일 80주년인 올해의 의미를 강조한 만큼 베이징 올림픽을 마친 이후인 4월께 ICBM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 개발을 자강력 강화라고 주장했다. 미사일 발사 현장에 김 위원장이 발길을 끊거나,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도 신형 무기를 내놓지 않는 등 미국을 의식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외교적 관여에 방점을 둔 대북 정책을 확정하고, 북한이 꺼리는 인권특사보다 대북특사를 먼저 임명하며 상황 관리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미국을 겨냥했다. “우리 국가를 악랄하게 중상모독하면서 무려 20여 차례의 단독제재조치를 취하는 망동”이라거나 “현 미 행정부는 우리의 자위권을 거세하기 위한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면서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는 속에서도 북한이 중국에 열차를 보내며 제한적으로 국경을 개방할 정도로 북한의 상황이 심각하다”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1년 동안 지켜봤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대북제재나 이중잣대 철회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의 발표 시점이다. 북한 매체는 이날 오전 6시를 전후해 정치국 회의 결과를 내보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과 관련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코로나19 등 자국 내 문제와 이란·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북한 문제가 밀리자 모라토리엄 파기 위협 카드로 압박에 나선 셈이다. 북한의 발표가 안보리 회의 직전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등의 제안으로 21일 오전 1시(한국시간) 열리는 안보리 비공개회의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한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를 강행할 경우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급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대부분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고, 북한이 2012년 2·29 합의를 어떻게 일방적으로 파기했는지 등을 잘 알고 있다. “나쁜 행동에 보상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직접 체득한 셈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제재 강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자 제재는 물론이고 유류(petroleum) 수입을 추가로 제한하는 안보리 제재도 가능하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최근 한반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북한의 일련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진전시켜 나간다는 원칙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덮어놓고 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거듭 증명됐다”며 “미국은 성의를 갖고 실제 조치를 취해 북한의 합리적인 관심에 응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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