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현대차 제네시스 GV60을 계약한 직장인 이모(45)씨는 올해 전기차 국고보조금 개편안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전기차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차량 가액 상한선이 60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낮아져서다.
이 500만원 차이 때문에 이씨의 고민이 커졌다. GV60은 5990만원에 출시돼 작년엔 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씨는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주문이 밀려 올해 하반기에나 차량을 받을 텐데 작년보다 보조금을 450만원이나 덜 받는 셈”이라며 “계약을 해지하고 돈을 더 보태서 독일산 하이브리드차를 살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전기차 보조금…복잡해진 선택지
앞서 산업통상부·환경부 등이 ‘2022년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침 개편안’을 발표한 뒤 전기차를 사려던 소비자들이 술렁이고 있다. 자동차업계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개편안에 따르면 전기차 기준 대당 보조금 최대치는 8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하향된다. 보조금 100% 지급 차량가액 상한선은 5500만원으로 내리고, 보조금 50% 지원 대상도 5500만~8500만원으로 낮아진다.
자동차업계는 통상 전기차 보조금 상한선에 맞춰 차량 가격을 책정한다. 예컨대 제네시스 GV60은 지난해 상한선(6000만원 미만)에 맞춰 5990만원에 내놨다. 국고 보조금 800만원을 받고,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서울시 200만원)까지 합하면 4990만원에 살 수 있었다. 출고 가격보다 1000만원 싸게 살 수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일단 국고 보조금을 350만원 밖에 못 받는다. 지자체 보조금은 추후 발표 예정인데, 국고 보조금 추세에 맞춰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보조금 혜택이 줄다 보니 소비자들도 어떤 가격대의 차를 사는 게 유리한지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한 네티즌은 전기차 관련 인터넷카페에 “보조금을 최대치로 받을 수 있는 아이오닉5(현대차)나 EV6(기아)로 기울고 있다”고 썼고, 다른 네티즌은 “고급사양 전기차는 대부분 50% 밖에 못 받으니 이참에 테슬라를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테슬라 ‘5999만원 꼼수’ 또 나올까
자동차업계는 신차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 고민에 빠졌다. 보조금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출렁이기 때문이다. 또 보조금 효과를 최대로 보려면 속도전 역시 중요하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국고 보조금 상한선(6000만원)이 발표되자마자 테슬라는 모델3의 가격을 5999만원으로 낮췄다.
익명을 원한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작년부터 보조금 상한선을 둔 것은 다분히 테슬라를 의식한 조치였다”며 “대신 국내 전기차 판매가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테슬라가 이례적으로 가격을 낮춰 보조금 수요를 싹 쓸어갔다”고 전했다.
실제로 작년 수입 전기차 판매량이 2만3000여 대였는데, 테슬라 판매 비중이 74%(약 1만7000대)였다. 테슬라는 전기차 보조금이 거의 소진된 하반기 이후 다시 차량 가격을 올렸다. 현재 모델3은 6000만원, 모델Y는 7000만원 중후반대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전기차 시장이 보급형‧고급형으로 양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테슬라 가격은 이미 보조금 100% 범위를 넘어섰고, 비싸도 잘 팔리기 때문에 고가 정책을 계속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며 “폴스타2처럼 5500만원 이하의 보급형으로 승부를 보거나, 보조금 50% 구간에 해당할 제네시스·벤츠·BMW·아우디 등은 가격 책정과 출시 시기 등을 두고 눈치 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