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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임기중 50% 신뢰 안되면 사퇴…다른 후보도 약속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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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0일 “임기 중반 여야가 합의하는 조사방법으로 국민의 신뢰를 50% 이상 받지 못하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며 “모든 후보들도 중간평가 약속을 권고한다. 이 정도로 자신이 없다면 후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중앙일보와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가 공동주최한 '차기정부운영, 대통령 후보에게 듣는다'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중앙일보와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가 공동주최한 '차기정부운영, 대통령 후보에게 듣는다'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행정학회ㆍ한국정책학회ㆍ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차기정부운영, 대통령 후보에게 듣는다’ 토론회 기조발제에서 “선거 때만 고개 숙이는 정치 풍토와 진영정치의 포로가 돼 내로남불식 범죄행위조차 묵인해 주는 관행들이 한국 정치를 병들게 하고 책임정치의 실종을 불러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깨끗한 청와대, 유능한 정부”를 목표로 제시하며 “청와대는 반으로 줄이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가 아닌 책임 총리ㆍ책임 장관의 국무회의를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3주에 걸쳐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6일)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13일)에 이어 이날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주요 후보가 모두 직접 참석해 정부 운영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다음은 안 후보의 토론회 기조연설 전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기조연설 전문

존경하는 한국행정학회 정책학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입니다.

오늘 저는 차기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영 패러다임의 전환, 그리고 대통령의 책임 정치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정치하기 전부터 왜 대통령의 공약, 심지어는 취임 선서의 내용까지도 지켜지지 않는지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가진 원래 생각과 중요하게 생각하던 우선순위는 그 사람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전문가들이 만든 공약을 발표해서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변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래 그 사람의 과거 행적으로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우선순위를 알 수 있고 대통령으로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 과학공약 발표한다고 해서 그 다음 정부에서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습니까?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저는 정치를 하기 전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10년 만에 진중권 씨와의 대담집인 선을 넘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제 생각이 10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초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에 정말 심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안철수가 당선돼서 구성하는 차기 정부의 모토는 ‘깨끗한 청와대, 유능한 정부’입니다.

차기 정부가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정권 교체가 아니라 반사이익에 기댄 적폐 교대일 뿐입니다.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정권 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닥치고 정권교체가 아니라 더 좋은 정권교체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째로 깨끗한 청와대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먼저 무엇보다도 대통령 자신과 가족들이 깨끗해야 가능합니다. 지난 4년반 동안 이 정권은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 얼마나 많은 반칙과 특권, 편법과 기득권 간의 연결이 만연해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국민들은 좌절하고 분노했습니다. 대통령과 정권핵심들이 깨끗했거나 깨끗한 사회를 지향했다면 그런 인사를 했겠습니까? 대통령과 가족들이 깨끗해야 기득권과의 결탁이 없고, 청와대와 공직사회가 깨끗해지고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습니다.

개혁은 한마디로 기득권과 싸우는 겁니다. 그런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깨끗하지 못한 청와대는 늘 과거에 발목 잡힐 뿐만 아니라 미래를 지향할 수도 없는 겁니다.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오랫동안의 이념정치 과잉과 진영정치에 갇혀 왔습니다. 패거리 정치가 조직온정주의와 결합하고 기득권화 되면서 개혁 의지는 물론 국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조차 없습니다. 오직 시대의 요구와 국민이 바라는 변화와 개혁에 매진하려면 청와대와 기득권과 관계없어야 하며, 대통령과 가족들이 깨끗해야 합니다. 조금 더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깨끗하고 도덕적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격과 국민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일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기득권에 빚진 것이 없어 그 어떤 후보보다 비리에 단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청와대 정부라고 불릴 정도로 비대해진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을 분산하고 비대해진 청와대 비서실 규모를 반으로 줄이는 겁니다.

현 청와대 비서실 직원만 443명이고, 예산만 899억 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으로 줄여야 합니다. 작은 청와대가 깨끗한 청와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방만한 운영 속에 무능이 있고 권력이 한 군데 집중 되면 그리고 견제가 없으면 고인물이 썩어가듯 부조리의 싹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청와대 비서실, 안보실, 정책실이 내각과 공공기관에 얼마나 많은 유세를 부렸겠습니까? 그동안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제도와 법 이전에 비대한 청와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셋째, 유능한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유능한 내각의 첫 걸음은 내각의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책임 총리, 책임 장관제를 보장해서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국가 전략적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이렇게 들으면 국무총리를 일 잘하는 분으로 뽑아야겠습니다. 장관들에게는 소관부처에 인사권을 보장해서 부처 장악력을 극대화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부처를 이끌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시대 이제 끝내야 합니다. 21세기는 대통령이 다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다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만기친람 제왕적 대통령제야말로 비효율적 국정운영의 극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총리는 의전총리, 대독총리고 장관도 고위공직자도 청와대만 쳐다보는 내각이라면 그 내각은 죽은 내각이고 일하는 내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청와대는 반으로 줄이고 책임 총리, 책임 장관들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수석보좌관 회의가 아닌 국무회의를 국정운영의중심으로 만들겠습니다. 내각도 여의도와 결탁한 정치관료들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전통 직업관료와 전문가가 공직사회의 중심이 되는 테크노크러트 전성시대를 열겠습니다. 이것이 일 잘하고 책임 행정을 실현하는 유능한 정부의 시작이 될 겁니다.

넷째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군살을 빼겠습니다. 이 정권은 집권하자 17만명의 공무원 수를 늘리겠다며 그동안 10만명이 넘는 공무원 수를 증가시켜왔고 그 비효율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습니다. 비대한 청와대도 문제지만 비대한 내각도 비효율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모두 지속가능한 국가전략 차원에서 객관적인 조직 경영 진단을 받고 슬림하고 스마트하게 일하는 정부 조직으로 변화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저는 집권하면 즉시 중앙정부와 공공부문 및 공기업 전체에 대한 조직경영진단 방안을 강구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구조개혁을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 역시 공적 연금 개혁처럼 표를 얻는 게 아니라 득표에 불리한 약속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표를 위해서 진실을 피해가고, 해야 할 개혁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고질병이 곪을 대로 곪은 위기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저는 정치가의 길을 걷겠습니다. 무엇보다 청와대를 줄이고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제를 확립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권력의 사유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에 엄청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낼 겁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책임 정치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책임 정치의 실종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의 문제입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당선만 되면 선거 때 약속은 무시하고 팽개치기 일쑤니 책임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선거 때만 고개 숙이는 정치 풍토와 진영정치의 포로가 되어 내로남불식으로 범죄행위조차 묵인해 주는 관행들이 한국 정치를 병들게 하고 책임 정치의 실종을 불러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조국 사태를 포함해서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장관급 고위공직자들의 면면은 불공정과 반칙과 특권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생각하고 정치의 책임을 생각했다면 감히 그런 인사를 국민 앞에 내놓지 못했을 겁니다.

취임식에서 했던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정치, 국민과의 약속을 우습게 하는 정치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겠습니까? 국민과의 약속을 고의로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임기 중에 물러날 수 있는 관행과 정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국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전형적인 기득권 방어논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책임지는 정치문화가 정착되면 정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혁되고 미래정치로 전환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1월 1일 출마 선언문에서 당선되면 임기 중반에 재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족쇄를 차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고, 취임사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는 정치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당선된 후 임기 중반에 여야가 합의하는 조사방법으로 국민의 신뢰를 50% 이상 받지 못하면 깨끗하게 물러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른 모든 대통령후보들도 중간평가 약속을 권고합니다. 이 정도의 자신감이 없다면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책임 정치, 약속을 지키는 정치는 독선과 아집의 국정운영 행태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이제 진영 정치의 시대를 끝내고 과학과 실용의 시대를 열어야 하듯이, 거짓의 정치, 위선의 정치를 끝내고 책임 정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저는 당선되면 중간평가 통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일할 것입니다. 그러면 정치도 국정 운영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가 다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오늘 드린 말씀 외에 한국 정치와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여러 생각들을 다듬다가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설날 전에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서 제가 가진 정치개혁에 대한 계획을 국민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많이 부족하지만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 말씀드렸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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