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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굴로 가는 기분이었다"는 이 지휘자, 유럽 정상급 공연장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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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시절의 성시연. [사진 클래식앤]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시절의 성시연. [사진 클래식앤]

 지휘자 성시연(46)은 2018년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에서 물러나고 베를린으로 떠났다. 4년을 보낸 안정적 ‘직장’을 떠나 적(籍)을 두지 않은 채 타지에 머물렀다. “다시 부딪혀보고 싶었다.” 그는 14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들판, 혹은 사자 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시 부딪히면서 더 커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지휘자 성시연, 유럽 홀로서기 4년만에 암스테르담 데뷔 #"10년 전 몇바퀴씩 걸어 돌으며 데뷔 희망했던 그 무대" #현지 언론 "다시 무대에 설만한 훌륭한 지휘" 호평

성시연은 10여 년 동안 좋은 경력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콩쿠르 우승,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 1위 없는 2위 이후 미국 보스턴 심포니의 사상 최초 여성 부지휘자로 임명됐다. 2009~2013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2014년 경기필에 임용됐다. 경기필과 함께 유럽 연주, 음반 발매를 하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던 중 돌연 프리랜서로 유럽에 정착했다.

‘사자굴’에서의 소식은 지난해 11월 들려왔다.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를 지휘하며 데뷔했다. 이 자존심 강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한국인은 그동안 정명훈뿐이었다. 성시연은 중국 작곡가ㆍ지휘자 탄둔이 코로나 19 봉쇄 때문에 비운 지휘대에 대타로 오르는 기회를 잡았다. “9월 말에야 연락을 받아 급하게 무대에 섰다”고 했다. 성시연은 윤이상 ‘무악’, 버르토크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을 지휘했다. 네덜란드 일간지 트라우(Trouw)는 “멋진 프로그램으로 오케스트라 최상의 연주를 끌어냈다. 무대에 다시 설 만한 가치가 있는 지휘였다”고 평했다.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지휘자 성시연의 공연 장면. [사진 클래식앤]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지휘자 성시연의 공연 장면. [사진 클래식앤]

성시연은 “10년 전쯤에 암스테르담에 들렀을 때 이 공연장 주위를 빙빙 돌면서 희망과 꿈을 품었다”며 “오래 걸리긴 했지만 한 발씩 잘 왔다는 생각을 무대에서 했다”고 말했다. 또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역시 완벽했다. 특히 자신들의 공연장이 가진 특성에 따라 기민하게 반응하는 연주가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1888년 문을 연 공연장 콘세르트허바우는 오케스트라에 최적화된 풍성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한국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을 선택했던 성시연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특한 음색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해본 단원은 물론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피리 소리, 판소리의 음향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단원들과 의견을 많이 나눴다.” 그는 “이번 연주에 대한 평 중에 ‘윤이상의 작품을 다시 발견했다’는 의견이 나에겐 가장 기뻤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7월 1일에도 명문 오케스트라의 지휘 데뷔를 앞두고 있다.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다. 이 악단의 현대 음악 페스티벌에서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윤이상의 예약을 연주한다. 현대 음악으로 유럽 주요 무대에 잇달아 데뷔하게 된 성시연은 “동시대 음악은 연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 좋은 작곡가가 많아 다행이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지휘대가 여성에게 열리는 시점이다. 유럽과 북미의 많은 오케스트라가 여성 지휘자를 예술 감독, 혹은 객원 지휘자로 선택하고 있다. 성시연은 “최근에는 ‘남성(male)’ 지휘자로 표기할 정도로 여성 지휘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하나의 유행처럼 지나가고 나면 정말 실력 있는 이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 치열한 본토에서 용감하게 부딪혀보고 있는 성시연은 “먼 미래엔 한국에 다시 돌아와 하나의 오케스트라와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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