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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에 세례 거절한 신부, 30년 지나 후회한 이유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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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8)

울릉도 북쪽 천주교 천부성당에 몸담았던 최 베다 신부의 이야기다. 울릉도에 ‘아바’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청각 장애인으로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와 ‘바’ 밖에 없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울릉도에는 성당이 두 곳이며 천부성당은 국토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성당이기도 하다.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성당의 모습. [사진 천부성당]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성당의 모습. [사진 천부성당]

아바는 동네와 조금 떨어진 집에 혼자 살았다. 그는 글을 몰랐으며, 겨울에 파도가 치면 해변으로 밀려 나온 미역을 말려 팔고 봄이 되면 산나물을 뜯으며 살았다. 한번은 그의 집을 돌아본 신자가 “아바라는 사람이 사는 게 너무 어렵고 또 작년 장마에 산에서 토사가 밀려와 구들이 막혀 불도 못 피우고 겨우살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신자들은 “우리가 구들을 손봐주자”며 면사무소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구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는 성당 신자들이 자기 집을 고쳐준다는 것을 알고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사흘이나 걸리게 되었다. 마지막 날 아바는 불을 피우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신자들은 대충 일한 뒤 갑자기 모두 도망가 버렸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아바와 부엌은 너무 지저분했다. 거기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바의 새까만 손가락은 된장찌개 그릇을 쑥쑥 드나들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그 음식은 못 먹겠다며 달아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신부는 혼자 남아 독상을 받았다. 신부는 음식을 억지로 먹었다. 아바는 지저분한 얼굴에 머리도 엉망인 채 신부 옆에 앉아 식사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베다 신부는 그때부터 차려 놓은 음식은 어떤 경우든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는 이후 그걸 실천하고 또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구들을 고쳐준 뒤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아바가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일요일이면 한복을 차려입고 입에 립스틱을 바르고 성당에 제일 먼저 나와 앉았다. 시계도 볼 줄 모르고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아바가 미사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십자를 긋는 성호경도 옆 사람을 보며 따라 했다.

2016년 재건축을 하기 이전의 천부성당 스케치. 천부성당은 국토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성당이다. [사진 천부성당]

2016년 재건축을 하기 이전의 천부성당 스케치. 천부성당은 국토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성당이다. [사진 천부성당]

한참 지나 신부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 아바에게 세례를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였다. 베다 신부는 인근 성당 신부와 상의했다. 결국 세례를 주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바는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심신이 박약한 한정치산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신부는 세례를 주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고 이듬해 울릉도를 떠났다.

베다 신부는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아바에게 세례를 주었어야 했다”며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회상했다.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었다. 비장애인도 교리 과정을 마치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더욱이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자가 수두룩하고 세례를 받은 뒤 하느님을 떠난 사람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아 있다.

베다 신부는 덧붙인다. “세례의 조건은 교리를 많이 아는 것보다 마음속 하느님에 의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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