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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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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베스트셀러란 단어를 잘 팔리는 책에 처음 사용한 것은 1889년 미국 일간지였던 캔자스 시티 앤드 스타였다. 하지만 이 표현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895년 미국 문예지 ‘북맨’이 주요 도시에서 많이 팔린 책들의 리스트를 꼽으면서다. 북맨은 이후 ‘퍼블리셔스 위클리’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를 선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947년부터 베스트셀러를 게재해오고 있다. 100년이 훌쩍 넘는 베스트셀러 선정의 역사는 많이 팔린 책에 대한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말해준다.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를 주기적으로 선정한다. 대형서점은 눈에 띄는 넓은 공간을 할애해 베스트셀러 매대를 설치한다. 온라인 서점 역시 홈페이지 대문에 베스트셀러 순위를 가장 먼저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출판계에서는 사재기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진다. 출간 초기 사재기 작전을 펼치면, 판매 부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에는 출판사 대표 등 6명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끌어올리려 사재기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치 팬덤이 조직적으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뛰어들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관련 서적 띄우기로 표현하는 모양새다. 이런 책은 대부분 절반 혹은 그 이하의 진실을 담은 편향성에도 불구하고,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다. 출간 전부터 좌표를 찍어 서로 구매를 독려하다 보니, 예약 구매도 폭발적이다.

2020년 8월에는 조국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조국백서’를 표방하며 출간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출간한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온라인에 올라온 이들 책에 대한 서평은 책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 자신의 정치성향이나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글이 주를 이룬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에 대한 관심이 출판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출판시장이 진영논리 기싸움으로 뒤덮이고 세(勢) 과시 경연장으로 변질하는 것은 안타깝다. 어차피 정치 팬덤이 떠받치는 ‘반짝 베스트셀러’는 금방 잊힌다. 오랜 시간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양서(良書)는 아무렇게나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