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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07) 별리가(別離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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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별리가(別離歌)
선조(1552~1608)

오면 가랴하고 가면 아니오네
오노라 가노라니 볼 날이 전혀 없네
오늘도 가노라 하니 그를 슬허하노라
-역대시조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시문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던 노진(盧禛)은 대사간·대사헌 등의 내직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그가 기어이 한강을 건너자 왕은 이 노래를 지어 은쟁반에 담아 중사(中使)를 보내 전했다고 한다. 1572년 선조(宣祖) 5년 때의 일이다. 곁에 두고 싶은 신하를 떠나보내는 안타깝고 야속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는 비단 군신 관계에서뿐 아니라 순수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우러나는 정이라고 하겠다.

훗날 정여립의 난 때 수백 명의 선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선조의 젊었을 적 신하 사랑은 이러하였다. 그의 치세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나라가 초토화된 것은 당쟁으로 인한 국론분열이 가장 큰 화인(禍因)이었다. 일본의 정세를 살피러 통신사로 보낸 정사와 부사의 엇갈린 보고 가운데 낙관적인 보고를 택하고 방비에 허술했던 것이 국난을 초래했다.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자 나라를 건진 이순신(李舜臣)도 잡아 올려 죽이려 했다. 문제적 군주는 이렇게 위험하다.

이러한 정세 판단은 현재에도 다르지 않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를 보고도 한쪽은 유사시 선제타격을 주장하고, 한쪽은 국민이 걱정한다며 종전선언을 주장한다. 아무리 역사가 가르쳐줘도 상황을 정략적으로만 해석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안보가 더욱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