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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밤을 지샐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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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내려오는 풍습 가운데 ‘수세(守歲)’라는 것이 있다.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어릴 적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수세는 설 전날인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 일을 뜻한다. 이날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지 않고 놀면서 밤을 보냈다.

어린아이들은 수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눈썹 하얘지면 어떡해. 오늘은 안 자고 밤을 샐 거야”라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낸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밤(을) 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새다’는 잘못된 표현으로 ‘새우다’를 써야 바르다.

‘새다’는 ‘날이 밝아 오다’는 뜻을 지닌 자동사다. 자동사는 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작용이 주어에만 미치는 동사로,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새우다’는 타동사로, 동작의 대상인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와 같이 조사 ‘을/를’이 붙는 목적어 뒤에서 사용된다.

정리하면 주격조사 ‘이’가 붙는 ‘밤이’ 뒤에는 ‘새다’를, 목적격조사 ‘을’이 붙는 ‘밤을’ 뒤에는 ‘새우다’를 써야 한다.

이는 ‘지새다’와 ‘지새우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밤이 지새도록 술잔을 기울였다”에서와 같이 ‘밤이’는 ‘지새다’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다”에서처럼 ‘밤을’은 ‘지새우다’와 짝을 이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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