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대출 금리가 상단 기준 5%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 모습. 연합뉴스.
직장인 김모(39)씨는 오는 7월 전셋집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하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계획이지만, 혹시라도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며 거부할까 봐 연일 집주인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김씨는 2년 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A아파트(84㎡)를 전세보증금 4억3000만원에 구했다. 보증금 절반가량은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김 씨는 “2년 사이 전셋값은 치솟고, 전세대출 금리도 뛰고 있어 걱정”이라며 “만일 (전세) 계약 연장이 안 되면 전세 대신 월세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차인(세입자)에게 대출 한파가 다가오고 있다. 최근 대출 금리가 오르며 전세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진 데다, 정부의 대출규제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어서다. 더욱이 오는 7월 말 임대차 3법에 따른 갱신 계약이 끝나는 만큼 전세대출 수요도 급증할 수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치열한 대출 경쟁에 은행권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1년 사이 전세대출 금리 1%p 뛰어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 5% 눈앞.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세자금 대출금리는 상단 기준 연 5%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 따르면 18일 기준 전세대출 금리(평균치)는 연 3.65~4.57%다. 지난해 1월 말(연 2.52~3.49%)과 비교하면 1년여 사이 최저·최고금리가 각각 1%포인트 이상 뛰었다. 연 2%대 금리의 대출 상품은 지난해 10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전세대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대출의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서울에서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면서 연 4.57% 금리에 2억원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연간 이자는 914만원으로, 세입자는 매달 약 76만2000원을 갚아야 한다.
반면 2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꾸면 세입자는 대출 이자보다 7만9000원 적은 약 68만3000원을 월세로 내면 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 4.1%(한국부동산원 자료)를 적용한 금액이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전세 이자가 서울 아파트 월세보다 비싸 .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준금리 인상에 대출금리 오름세
전세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은 한은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지표 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금융채(단기물) 금리가 눈에 띄게 오르고 있어서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1.69%)는 전달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초(0.86%)보다 1.9배 올랐다. 특히 최근 두 달간 0.4%포인트 뛰며 상승 속도를 높이고 있다.
또 일부 시중은행이 전세대출 금리의 기준으로 삼는 은행채 6개월·1년물 등 금융채 단기물 금리도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금융채 6개월물(AAA)은 19일 기준 연 1.652%로 1년 전(연 0.814%)보다 2배로 상승했다.
금융권은 당분간 전세대출 금리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코픽스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이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 데 드는 이자가 상승해 조달 비용이 비싸진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금리에 영향을 받는 각종 대출 금리는 한동안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픽스(COFIX)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은행연합회]](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1/19/4086ddd1-acac-4e64-bff6-55680d89b111.jpg)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픽스(COFIX)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은행연합회]
하반기 갱신계약 끝나는 수요 급증
올해 세입자는 이자 부담만 커지는 게 아니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대출 한파의 직격탄까지 맞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전세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총량관리 목표치(4~5%)를 지난해(5~6%)보다 낮춰 잡았다.
시중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전세대출에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전세계약 갱신 시 전셋값 오른 만큼(증액 범위)만 대출해주고, 전세대출 신청일도 잔금 지급일 이전으로 제한했다. 전세대출을 받아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 다른 용도에 쓰는 걸 막기 위한 장치(규제)를 더 한 것이다.
게다가 오는 7월 말이면 임대차 3법 시행 2년 차에 접어든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임차인이 계약 만료로 전세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 2~3년 새 급등한 전셋값(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올려주기 위한 추가 대출 수요가 은행으로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대출 문턱과 이자 오름세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하반기 계약갱신 청구가 끝나는 세입자들로 인해 전세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은행의 우려가 크다”며 “결국 은행은 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는 등 대출 문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인한 실수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세세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급증한 가계부채를 신속히 해결하는 게 맞지만, 단순히 총량을 억제하는 건 위험하다”며 “수급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부 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히 전셋값과 대출 금리 급등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본격화되면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젊은층과 노후 준비가 필요한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면서 “가계 부채 문제를 범부처가 협력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