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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명분 쌓으려 다 죽여" 도쿄대 좌절 日 고2 칼부림 쇼크 [도쿄B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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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도쿄B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일본의 대학입학 공통테스트(센터시험)가 있었던 지난 15일, 일본 도쿄대 앞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학교 인근 도로에서 교복을 입은 17세 소년이 시험을 보러 온 남녀학생 두 명의 등을 칼로 찌른 후 근처에 있던 72세 남성에게도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이후 소년은 칼로 자해를 시도하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 체포된다.

지난 15일 경찰들이 일본 도쿄대 센터시험장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미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5일 경찰들이 일본 도쿄대 센터시험장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미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범행을 저지른 소년은 나고야(名古屋)의 한 사립고등학교 2학년생. 전날 밤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고 이날 새벽 도쿄(東京)에 도착했다. 소년의 배낭에는 칼이 세 자루, 직접 만든 화염병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을 찌르기 전, 소년은 도쿄대 인근 지하철역 여러 곳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역무원들의 빠른 진화 덕분에 큰 화재로 번지진 않았다.

그는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의사가 되고 싶어 도쿄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입시 상담에서 '도쿄대는 무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너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자리에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람들을 죽여 죄책감을 가진 채로 할복하려 했다"고 했다.

삶의 의지를 잃고 죽음을 생각한 사람이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 함께 죽으려 계획하는 것, 최근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확대 자살'의 한 사례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두 사람쯤 죽이고 사형당하고 싶었다"

소년이 지하철역에 불을 붙이려 한 것은 지난해 10월 31일 도쿄 지하철 게이오선에서 일어난 이른바 '조커남 사건'의 모방으로 보인다. 핼러윈 데이였던 이날 밤 8시경, 스물 네살의 남성 핫토리 교타가 열차 안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16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달 31일 일본 수도 도쿄도(東京都)의 전철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뒤 불을 질러 십수명이 부상했다. 고쿠료역에 열차가 긴급 정차하자 승객들이 창문으로 대피하는 모습(왼쪽)과 용의자 남성이 범행 뒤 담배를 피우는 모습. [트위터 캡처]

지난달 31일 일본 수도 도쿄도(東京都)의 전철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뒤 불을 질러 십수명이 부상했다. 고쿠료역에 열차가 긴급 정차하자 승객들이 창문으로 대피하는 모습(왼쪽)과 용의자 남성이 범행 뒤 담배를 피우는 모습. [트위터 캡처]

조커 복장을 한 범인은 아비규환이 된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었다고 한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그는 "최근 실직했고, 친구도 없다"면서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아 두 명 정도를 죽이고 사형을 당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17일에는 오사카(大阪)시의 한 병원에서 불이 나 용의자를 포함해 2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범인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61)는 가연성 액체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병원에 들어와 출입구 근처 난로 옆에 놓고 봉투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불이 크게 번지는 사이, 그는 탈출구 앞에 손을 들고 서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환자들은 비상구가 없는 병원 안쪽으로 몰려갔고 대부분 질식사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후 드러난 그의 행적이다. 다니모토는 2008년 이혼하고 2010년 일하던 공장을 그만둔 후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11년 4월에는 전처의 집에 찾아가 아들을 부엌칼로 살해하려다 살인미수로 4년 형을 살았다. 재판에서 그는 "외롭고 고독해 자살을 생각했지만, 죽는 것이 무서웠다"며 "누군가를 죽이면 나도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확대 자살, 원인은 고독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확대 자살'이라는 용어는 지난 2001년 6월 오사카교대 부속 이케다(池田)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 학교와 아무 관련이 없었던 범인이 교실로 뛰어들어 칼을 휘둘러 초등학생 8명이 사망하고 교사 2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해 12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오사카 병원 방화사건에 관련한 보도를 보고 있다. 화면 속 인물은 사건 용의자인 다니오토 모리오. 그는 이 화재로 숨졌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오사카 병원 방화사건에 관련한 보도를 보고 있다. 화면 속 인물은 사건 용의자인 다니오토 모리오. 그는 이 화재로 숨졌다. [AFP=연합뉴스]

일본에선 그 이전에도 공공장소에서 흉기로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도리마(通り魔·길거리의 악마)'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확대 자살'이 이 사건들과 다른 점은 범인이 스스로 죽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이들을 죽이기로 했다는 점이다. 당시 범인도 "지금까지 산 것이 불쾌하고 모든 게 싫어졌다. 자살로는 성에 안 찬다. 차라리 살인하고 사형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확대 자살'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층의 증가, '자조(自助)'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있다. 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이 불행한 원인을 '남의 탓' '사회 탓'으로 돌리는 심리 상태가 '같이 죽자'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립·고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비슷한 범죄가 빈발하는 추세다. 요즘 일본에선 지하철을 탈 때 '혹시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경계한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닛케이는 고립된 이들이 머물 자리를 제공해주는 것, 마음을 털어놓을 상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일본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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