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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담합 과징금 962억…공정위, 해수부 보란듯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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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동남아 해상노선에서 운임을 담합한 23개 선사에 공정거래위원회가 9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고려해운·흥아라인·HMM(옛 현대상선) 등 12개 국내 선사와 11개 외국 선사가 대상이다. 해운업계는 “법에 따라 허용된 공동행위였다”며 거세게 반발한다.

18일 공정위는 23개 선사에 대해 총 962억원의 과징금과 시정 명령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한국~동남아 수·출입 항로에서 컨테이너 해상화물 서비스 운임을 담합했다고 결론 내면서다. 2003년 12월부터 2018년 말까지 120차례에 걸친 운임 담합을 위해 541차례의 만남이 이뤄졌고, e메일과 카카오톡 등으로 대화가 오갔다.

주요 선사 과징금 부과내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요 선사 과징금 부과내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해운업계도 공동행위 자체는 인정한 만큼 이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해운법 29조에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주요 쟁점은 운임 관련 공동행위가 해운법이 인정하는 범위에서 이뤄졌느냐였다. 업계는 해운법이 인정하는 범위며, 해수부에 몇 차례에 걸친 신고까지 완료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전원회의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해수부 관계자는 “따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구두로 이야기한 적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선사 관계자는 “운임이 더 내려가면 모두 망하니 서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은 자제하자는 수준의 협의만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사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차례 운임인상을 신고했지만, 실제 공동행위는 120회가량 이뤄졌고, 그 내용과 시점도 신고와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국장은 “2017년 2월에 (해수부에) 신고를 하고, 2018년까지 27차례 운임 인상을 합의했다. 1회 신고가 27번을 포괄한다는 주장은 타당치 않다”고 말했다.

해운업계가 제재에 민감한 건 동남아 노선뿐 아니라 한국~일본, 한국~중국 노선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남아서다. 공정위는 다른 조사에서도 지금의 기준을 계속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과징금 부과는 해운법 개정을 놓고 공정위와 해수부가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 해운법 개정안은 선사 공동행위 규제를 공정위가 아닌 해수부가 하는 내용이 골자로,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법안 소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법안에 소급 적용 조항이 들어가 있어 이번 제재도 무효가 될 수 있다.

해운업계 담합사건 그동안 어떤 일이

해운업계 담합사건 그동안 어떤 일이

공정위가 제재를 발표한 이 날까지도 해운법 개정을 둘러싼 두 부처 이견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도 “‘내용상 해운법에 근거하지 않은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겠다’는 식으로 (조항을 넣어) 잠정적으로 협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수부 관계자는 이날 “공정위 제재를 보면 해운법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위법성을 판단했다”며 “법 개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담합을 막아야 운임을 내는 수출 기업(소비자)을 보호할 수 있다는 공정위와, 운임 공동행위를 막으면 치킨게임이 가능한 글로벌 1~3위 선사를 가진 EU 등에 휘말려 국내 경쟁력을 깎아 먹을 것이라 보는 해수부·해운업계의 입장이 충돌하는 측면이 크다.

다만 해운업계에서 8000억원대 과징금을 우려하던 것과 달리 업계 상황과 특수성이 고려되면서 과징금은 1000억원 미만으로 줄었다.

정부 부처 간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는 “부처 간의 이견을 먼저 해소하고 하는 게 맞는 순서”라며 “협의가 되지 않았는데 기업 제재부터 들어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성명에서 “해운산업이 향후 공동행위를 정상 수행해 수출화물이 원활하게 수송될 수 있도록 해운법 개정안이 국회를 조속히 통과하길 탄원한다”며 “한~일, 한~중 항로 심사 종결을 요청하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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