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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3년 전 아바타 청년, ‘뉴 소셜’ NFT 갤러리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18 18:47

업데이트 2022.05.16 20:22

팩플레터 187호, 2022.1.13

Today's Interview
‘아바타 청년’ 이진하가 그리는 NFT 갤러리의 세계

안녕하세요, 여러분! ‘목요 팩플’ 인터뷰입니다.

새해에도 NFT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제(1월 12일)는 카카오 인기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NFT 300개가 1분만에 완판됐다고, 지난주엔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씨(OpenSea)가 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데카콘’이 됐다고 합니다. NFT의 자산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오늘 팩플이 소개드릴 창업자는 NFT에서 ‘소셜의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공유하고 소통하는 NFT의 세계는 어떨까요? 김정민 기자가 스페이셜 이진하 공동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를 가상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자칭 ‘수포자’에서 개발자·디자이너를 거쳐 창업자가 된, 타칭 ‘천재’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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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현장. 마이크로소프트(MS)가 화제의 증강현실(AR) 기기 ‘홀로렌즈2’를 공개하는 무대에 앳된얼굴의 아시아 남성이 홀로그램 아바타로 등장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는 누구였을까.

주인공은 이진하(35) 스페이셜(Spatial) 공동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 경기과학고를 수석 졸업하고 도쿄대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거친 삼성전자 최연소 그룹장 출신 창업자다.

MIT 미디어랩 시절 그는 선을 넘고 차원을 건너뛰는 경험의 세계에 주목했다. 키보드나 마우스 대신 모니터에 손을 넣어 조작하는 컴퓨터 ‘스페이스탑(SpaceTop)’, 만질 수 있는 3D 픽셀 ‘제론(ZeroN)’ 등. SF 영화에서나 보던 ‘손으로 정보를 만지는’ 세상이 그에겐 먼 미래가 아니었다.

그런 그는 2017년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삼성에서의 더 높은 자리, 구글과 페이스북의 영입 제안을 마다한 뒤였다. 공동창업자는 3D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스타트업 ‘범프탑’을 구글에 매각(2010년)한 아난드 아가라왈라 대표. 창업후 2년 만에 MS의 파트너로 부상한 스페이셜은 당시 차세대 가상 오피스로 주목을 받았다. 증강·가상(AR·VR) 현실에서 손가락으로 자료를 튕겨 주고받고, 자유롭게 원격회의 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그런데 스페이셜이 최근 NFT 갤러리로 주력 사업모델을 바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모델로 파인벤처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뉴스와 함께. 가상 오피스가 한창 주목받는 코로나 시대에, 왜? 팩플팀이 지난해 12월 15일 스페이셜에서 이진하 CPO를 만났다.

팩플레터 187호

팩플레터 187호

NFT 갤러리는 왜 돈이 되나

요새 가상 오피스가 잘나가는데, 왜 사업을 바꿨나. 
“스페이셜은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경험을 공유하는 ‘몰입감 있는 모임(immersive gathering)’을 지향한다. 이걸 실현할 가장 효과적인 기술이 AR/VR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맞춘 가상공간을 개발해왔다. AR/VR 기기 수십 대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기업들은 만족스럽게 스페이셜을 썼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상황이 급변했다.”
어떻게 변했나?
“당장 가상공간이 필요한 곳들로부터 ‘AR/VR 기기 없이 스페이셜을 쓰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래서 기기 없이도 웹·앱에서 접속가능한 버전을 만들었는데, 사용량이 폭등함과 동시에 사용자 80%가 헤드셋 아닌 컴퓨터나 모바일로 접속하는 현상이 생겼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개인 아티스트란 걸 발견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이진하 CPO를 스페이셜에서 만났다. 노변담화(fireside chat)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정민 기자

미국 뉴욕에 있는 이진하 CPO를 스페이셜에서 만났다. 노변담화(fireside chat)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정민 기자

자연적으로 아티스트들이 스페이셜에 유입된 건가.
“그렇다. NFT의 등장으로 디지털 아티스트는 작품만으로 먹고살 길이 열렸다. 그런데 이들이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없었다. 그때 입소문을 타면서 스페이셜에 들어온 분들이 많았다. 그들이 먼저 스페이셜을 ‘나만의 갤러리’처럼 활용하기 시작하더라. 우리가 스페이셜 웹 버전을 만든 게 결정적이었다. 아티스트들이 SNS에 본인 작품을 홍보할 때 스페이셜 웹 링크 한 줄만 추가하면 됐으니까. 이런 과정을 보며, 갤러리가 장기적으로 키울 사업이라 생각해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세계 최대 메타버스 전시장’을 목표로 한다.”
가상 오피스 사업이 잘 안 풀려서 바꾼 건 아닌가.
“지금도 계속 한다. 포드, 마텔, JP모건 등 포춘 1000대 기업의 30~40%가 타운홀 미팅이나 사내 행사에 스페이셜을 썼다(시범사용 포함). 그동안 이런 B2B 사용자들이 매달 내는 사용료가 스페이셜의 수익이었다.”
NFT 갤러리의 수익모델은.
“현재는 사용자 확보에 치중하고 있지만 다양한 수익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작품이 스페이셜에서 거래될 때 발생하는 수수료, 이벤트 진행 수익, 호스팅에 필요한 고급 기능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멤버십 등. 가급적 암호화폐 시세에 영향받지 않도록 구조화할 생각이다.”
웹에서 메타버스가 돌아간다면, AR/VR은 결국 지는 기술 아닐까.
“AR/VR의 전망은 여전히 밝다. 지금도 스페이셜은 VR로 경험해야 몰입감이 가장 좋다. AR/VR 헤드셋이 점점 가볍고 저렴해지고 있다. 머지 않아 매일 쓰는 도구가 될 것이라 확신하지만, 지금 당장은 웹의 접근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미래를 기다리기보다는 오늘의 사용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을 주고 싶어 (AR/VR은 잠시 미뤄두기로) 결정했다.”
이진하 CPO가 다른 공간도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모닥불 앞에서 ‘Jinha’s Home’ 포털을 눌러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노을 지는 바다가 감성적이었다. 김정민 기자

이진하 CPO가 다른 공간도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모닥불 앞에서 ‘Jinha’s Home’ 포털을 눌러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노을 지는 바다가 감성적이었다. 김정민 기자

Special, Spatial 

NFT 갤러리는 NFT 거래소와 뭐가 다른가.
“NFT 거래소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적다. 혼자 거래소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구매하는 커머스 플랫폼에 가깝다. 반면 NFT 갤러리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소셜 서비스다.”
새로운 소셜?
“NFT 아트뿐 아니라, 문화·예술 관련 각종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소셜 서비스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NFT가 인터넷을 ‘소통의 도구’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도구’로 진화시킬 수단이라고 본다. 이야기만 나누는 것보단 체험을 공유하는 편이 더 유의미한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이셜은 거래 자체보다 경험 요소에 더 집중한다.”
스페이셜의 NFT 갤러리를 둘러봤다. 아티스트는 클릭 한번으로 작품을 업로드해 갤러리를 꾸밀 수 있다. 소비자는 작품 우측의 하얀 태그를 눌러 오픈씨로 이동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김정민 기자

스페이셜의 NFT 갤러리를 둘러봤다. 아티스트는 클릭 한번으로 작품을 업로드해 갤러리를 꾸밀 수 있다. 소비자는 작품 우측의 하얀 태그를 눌러 오픈씨로 이동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김정민 기자

“첫째, 기술력이다. 무거운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아도, 웹 브라우저에서 실사형 아바타로 음성·화상 커뮤니케이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둘째, 공간감과 소리를 실제처럼 구현한 다양한 가상공간이 마련돼 있다. 펜트하우스, 농구장, 하늘섬, 산악지대, 파티장, 공원 등 종류가 아주 많다. 이곳 어디에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NFT 거래소 ‘오픈씨’ 갤러리(※스페이셜 계정이 있어야 접속 가능한 링크입니다)가 스페이셜에 있다. 영향력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들도 스페이셜에 입점해있어, 여기 올 이유가 분명하다.”
선점 효과가 있겠다. 어떤 아티스트들이 스페이셜을 사용 중인가.
“초현실주의 거장 ‘켄 컬러허’, 그래미상을 수상한 프로듀서 ‘일마인드’, 디지털 아티스트 ‘크리스타 김’ 등이다. 스페이셜에 작품을 전시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는가 하면, 스페이셜의 가상공간 그 자체를 만드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이들은 ‘제네시스 드롭’을 통해 가상공간을 판매한다.”
제네시스 드롭이 뭔가.
“민간 아티스트, 즉 메타버스 공간 디자이너가 직접 가상공간을 만들고 이를 스페이셜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다. 전시나 행사에 활용될 수 있는 공간들이 제네시스 드롭에 나온다. 나중엔 에어비앤비처럼 이런 공간을 일정 기간 빌려줄 수도 있다. 제네시스 드롭의 거래액 중 일정 비율을 스페이셜이 갖는다. 지난달 17일에 열린 제네시스 드롭에선 두 작품이 각각 13분15분만에 완판됐다. 디자이너 두 명이 총 1억 3600만원의 수익을 냈다.”
팩플레터 187호

팩플레터 187호

“뉴욕 같은 메타버스가 온다”

아바타에 하체가 없어서 솔직히 좀 기괴하다. 왜 이렇게 만들었나.
“아직 기술적 한계가 있다. 올해 안에 하체도 만들 계획이다. 지금은 페이스북 등 대형 VR 플랫폼도 하체 없는 아바타를 쓴다. 만화형 아바타가 아닌 실사형은 어설프게 하체까지 구현했다간 곤란해진다. 별안간 문워크를 한다든지, 스텝이 잘 꼬인다든지 실제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하지 않을 행동을 아바타가 한다면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화상회의 정도는 몰라도, 내 아바타가 돌아다니는 가상공간은 사람들이 아직 낯설어하는 것 같다. 
“몇 년 안에 보편화될 것이라 본다. 지금은 게임 같은, ‘애들용 메타버스’가 주류인데, 보편화되려면 뉴욕 같은 메타버스가 나와줘야 한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런 공간이다.”
뉴욕 같은 메타버스란?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의 메타버스는 디즈니랜드나 라스베이거스에 가깝다. 게임, 쇼, 패션 등이 핵심 콘텐츠고 나이 어린 사용자가 많다. 그런데 서울이나 뉴욕처럼, 보통의 어른들이 경험할 만한 콘텐트가 어디에나 있고 거기서 비즈니스 얘기를 하거나 예술을 감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가상공간이 등장한다면 메타버스는 순식간에 보편화될 거다.”
그런 메타버스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인 게 있나.
“스페이셜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3D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이를 위해 여러 블록체인 서비스들을 운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환경을 구축하려고 한다. 가령 이더리움 외의 암호화폐 서비스, 다른 메타버스에도 통용되는 아바타와 상품, 스페이셜에서 포털을 열어 다른 웹사이트나 메타버스로 이동하는 ‘오픈 포털’ 등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왜 아바타 중심으로 공간을 만드나. 
“지금도 우린 인터넷에 각자 아바타를 갖고 있다. 바로 ‘마우스 커서’다. 그게 좀 더 나를 잘 대변하는 모습이길 바라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 같다.”
스페이셜 내부를 돌아다녀보니, 공간감이 생생한 편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화면이 살짝 흔들리면서 ‘텅텅’ 하는 감각도 느껴진다. 가상현실 속 뉴욕을 이런 식으로 경험하며 자란 Z세대가 실제 뉴욕에 가보고 싶어할까,  
“가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상상이 주는 감동,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 그 차이에서 오는 새로운 감동은 전부 다르니까. 여러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14일 스페이셜 원격 시연회에서 소개된 스페이셜의 다양한 가상공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원, 산악지대, 펜트하우스, 파티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소리(멀어지면 안 들린다), 새소리나 물소리 등이 들리고 그래픽에서 질감이 느껴지는 등 공간감이 잘 구현돼있었다. 이밖에도 농구 코트, 농구 굿즈샵 등의 공간이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달 14일 스페이셜 원격 시연회에서 소개된 스페이셜의 다양한 가상공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원, 산악지대, 펜트하우스, 파티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소리(멀어지면 안 들린다), 새소리나 물소리 등이 들리고 그래픽에서 질감이 느껴지는 등 공간감이 잘 구현돼있었다. 이밖에도 농구 코트, 농구 굿즈샵 등의 공간이 있다. 김정민 기자

“주변에서 보는 나, 사서 고생하는 친구”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천재’ 같은 느낌이다.
“일단 좀 억울하다. 이력에서 연상되는 내 이미지와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내 이미지 사이엔 괴리가 정말 크다(웃음). 혹자는 내가 머리가 좋아서 쉽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난 한 번도 쉬웠던 적 없다. 편해질만 하면, 굉장히 어렵고 도전이 많은 곳으로 스스로를 던져넣고 마음고생하는 성격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가 어떻길래?
“나를 되게 안쓰럽게 여긴다. ‘어휴, 쟤가 또 사서 고생하네’ 같은 느낌? 새로운 도전 앞에선 굴욕감도 잘 견딘다고 하더라. 나는 그런 성격 덕에 내가 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가 된 것도 그 때문인가?
“이과였지만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해서 예술 계열 공부가 하고 싶었다. 대학 때 약간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었고, 잘 맞지 않았던 일본 공대 대신 한국 미대 재수도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학비를 안 대주겠다고 하셔서, 공학 배경을 살리면서도 최대한 예술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MIT 미디어랩에 갔다. 지금의 작업 방식은 훨씬 디자이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일단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미래의 고통을 잘 가늠하지 못 하는 것 같다(웃음). 그리고 한 번 사는 삶인데, 내가 갖고 있는 걸 바깥으로 꺼내지 못하고 살까봐 두렵다. 내 생명이 가장 올바르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을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래서 지금 가는 길이 성공이 보장된 편한 길이라도, 더 의미있고 영감을 받는 일을 찾으면 그쪽을 선택하곤 했다. 나중에 아파하고 후회하더라도, 극복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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