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증기까지 동원한다”…요즘 석화업계 화두는 폐플라스틱의 ‘부활’

중앙일보

입력 2022.01.18 16:58

업데이트 2022.01.18 17:44

LG화학 대산공장 전경 [사진 LG화학]

LG화학 대산공장 전경 [사진 LG화학]

“가정에서 분리배출해봐야 어차피 쓰레기로 분류됩니다. 단일 소재가 아니라서 재활용이 까다롭거든요.”

화장품 용기 재질 개선을 촉구하는 ‘화장품 어택 시민행동’ 관계자들은 복합재질(OTHER) 플라스틱 용기를 ‘예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모양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여러 재질이 섞여있는 탓에 기존 방식으로는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그런데 높은 열로 폐플라스틱을 녹여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를 뽑아내는 열분해유 기술이 발전하며 이 같은 우려가 점차 해소될 전망이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응해 정유·석유화학업계가 해외 기술업체와 손잡고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LG화학,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 건설

LG화학은 2024년 1분기까지 충남 당진에 국내 첫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초임계 수증기는 온도와 압력이 물의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에서 생성된 특수 열원이다. 액체의 용해성과 기체의 확산성을 모두 갖고 있다. 고온·고압의 초임계 수증기를 활용해 단일재질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즉석밥 용기나 비닐 뚜껑, 과자봉지 등 재활용하기 어려웠던 복합재질 제품도 열분해해 석유화학제품의 초기 원료인 납사를 추출할 수 있다.

LG화학은 이를 위해 초임계 열분해 원천 기술을 가진 영국의 무라 테크놀로지와 기술 판권을 가진 미국 KBR과 손잡았다. 공장은 연간 생산량 2만톤 규모로 건설되며 현재 기본설계 계약을 마친 상태다.

LG화학 관계자는 “기존 열분해 기술과 비교해 그을림이 거의 생기지 않아 생산성이 높다”며 “약 10t의 비닐·플라스틱을 투입하면 8t 이상의 열분해유가 생성되며 나머지 2t은 부생가스로 나와 공장 가동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SG 뜨자 열분해유 기술도 떴다 

열분해유 공장 짓는 정유.석화업계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열분해유 공장 짓는 정유.석화업계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열분해유를 추출하는 기술은 199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채산성이 낮아 재활용 사업이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본격화하고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활발해지며 열분해유 기술에 대한 정유·석유화학업계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전에는 열분해유를 활용하는 곳이 많지 않아 국내 중소기업 일부만 생산해왔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이 직접 열분해유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SKC도 설비 구축 계획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가운데)이 지난해 2월 대전광역시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연구개발 현장에서 열분해유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왼쪽은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 오른쪽은 이성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장. [사진 SK이노베이션]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가운데)이 지난해 2월 대전광역시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연구개발 현장에서 열분해유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왼쪽은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 오른쪽은 이성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장.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화학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내년 초부터 울산에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2024년 상업 가동이 목표로, 연간 20만t의 폐플라스틱을 투입해 약 108만 배럴의 열분해유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미국 열분해 전문업체 브라이트마크와 손잡고 글로벌 기술과 자체 기술을 결합한 설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국내 열분해 업체 에코크레이션의 지분 25%를 사들이기도 했다.

SKC는 일본의 벤처기업 칸쿄에네르기와 손잡고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파일럿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SKC 관계자는 “칸쿄에네르기가 보유한 기술은 다른 방식보다도 낮은 온도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어 수율과 생산성이 높다”며 “지난해 6월 상업 기술 공동소유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내 기술 독점권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2023년까지 울산공장에 상업화 설비를 구축해 연간 5만t 이상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생산된 3만5000t 규모의 열분해유는 SK피아이씨글로벌 울산공장의 보일러 연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는 공장 설립 검토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열분해유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열분해유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는 석유정제 공정에 열분해유 투입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4년 가동을 목표로 열분해유 생산설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초기 설비는 연간 생산량 5만t 규모로 구상 중이지만 실증사업 후 결과에 따라 향후 100만t 규모까지 설비를 확장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정유공정에 열분해유를 투입하며 실증 연구를 수행 중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이미 보유 중인 열분해 공정을 활용해 향후 연간 5만t 규모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시장은 연평균 17%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열분해유 생산량 기준으로 2020년 70만t 규모에서 2030년 330만t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열분해유 사업이 정체돼 있었던 것은 기술적인 한계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며 “최근에는 탄소저감 등 친환경 경영정책이 기업 실적과 투자 유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당장의 채산성과 관계없이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 사업이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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