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두산 유희관 은퇴

중앙일보

입력 2022.01.18 16:52

업데이트 2022.01.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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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은퇴를 선언한 두산 왼손투수 유희관. [연합뉴스]

은퇴를 선언한 두산 왼손투수 유희관. [연합뉴스]

'느림의 미학'으로 통산 100승을 거둔 왼손투수 유희관(36)이 마운드를 떠난다.

유희관은 18일 두산 베어스 구단을 통해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유희관은 2009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로 두산에 지명됐다. 유희관은 군복무(2011~12년)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두산에서 뛰었다. 개인 통산 281경기에 출전해 1410이닝을 던지면서 101승 69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58을 올렸다. 101승은 두산 왼손 투수 최다승 기록이다.

유희관은 "성적이 좋을 때나 부진할 때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모든 팬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1시즌이 끝난 뒤 고민을 많이 했다.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유희관의 별명은 '느림의 미학'이다. 가장 빠른 공을 던져도 최고 시속 135㎞ 정도였다. 고교 레벨에서도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에겐 '정확성'이란 무기가 있었다.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가장 잘 활용한 투수가 바로 유희관이었다. 유희관의 '세컨드 피치'는 싱커다. 오른손타자 입장에선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구종이다.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듯이 빠져나가는 싱커와 살짝 걸치는 직구를 번갈아 던지면 배트로 정확하게 맞히기가 힘들었다. 유희관이 싱커는 리그 구종가치 1위로도 여러 번 집계될 정도로 뛰어났다.

두둑한 배짱도 일품이었다. 그는 '내 직구는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었다. 실제로 유희관의 패스트볼 회전수(초당 37~38회)와 수직 무브먼트(55㎝)는 리그 최정상급이었다. 장타를 줄이고, 실제보다 덜 떨어져 떠오르는 느낌을 줬다. 시속 70~90㎞대 커브도 양념처럼 섞어 타자들을 혼란시켰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유희관은 군복무를 마친 2013년부터 2020시즌까지 8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8년 연속 10승은 이강철(1989~98년), 정민철 (1992~99년), 장원준(2008~17년)까지 네 명만 이룬 대기록이다. 유희관이 차곡차곡 승리를 쌓는 동안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2015∼2021년)에 진출하고, 세 차례 우승(2015, 2016, 2019년)을 차지했다.

2016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아이언맨 세리머니를 펼친 유희관

2016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아이언맨 세리머니를 펼친 유희관

하지만 가는 세월을 이길 순 없었다. 서서히 하락세를 그렸고, 2021년엔 생애 첫 FA(자유 계약) 자격을 얻었으나 연봉(3억원)보다 인센티브(7억원)가 더 큰 1년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1군과 2군을 오가며 4승(7패, 평균자책점 7.71)에 머무른 유희관은 결국 은퇴라는 선택을 내렸다.

유희관은 "아쉬움은 크지만… 느린 공으로 이 정도 버텼으니, 내 야구 인생은 성공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아직 은퇴 후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하건, 팬과 동료, 구단, 코칭스태프를 향한 고마움은 잊지 않겠다"고 했다.

13년 동안 몸담았던 두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유희관은 "후배들이 잘 성장해 베어스의 밝은 미래를 열었으면 한다. 마운드에서는 내려왔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응원하겠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유희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팬들에게 마지막 감사 인사를 전한다. 두산은 관중 입장 시기 등을 고려해 은퇴식을 열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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