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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보이스피싱 예방했던 경찰관, 이번엔 4000만원 막아 [영상]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오후 2시20분쯤 대전유성경찰서 도룡지구대에 “(어떤 고객이) 고액을 인출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지는 대전시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에 있는 한 은행지점. 신고를 받은 김희주(35) 경장은 동료 경찰관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했다. 도착 당시 A씨(40대 후반의 남성)가 은행 점포 안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대전유성경찰서 도룡지구대 김희주 경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2억원을 송금하려던 남성(오른쪽 붉은색 원)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해 11월 대전유성경찰서 도룡지구대 김희주 경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2억원을 송금하려던 남성(오른쪽 붉은색 원)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A씨에게 다가간 김 경장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신 것 같다. 혹시 어떤 용도로 쓰시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A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했다. 김 경장이 A씨의 동의를 얻어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이미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하는 악성 앱이 깔려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도 A씨는 김 경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40대 남성, '검사사칭' 전화받고 현금 인출 

양해를 구한 김 경장은 거듭 사용처를 물었다. A씨는 “자동차를 사려고 돈을 인출했다”고 답했지만 김 경장 일행은 석연치 않았다. 남성으로부터 자동차회사의 연락처를 받은 김 경장은 은행 밖으로 나와 직원과 통화했다. 하지만 직원의 대답은 A씨와는 달랐다. “신차를 구매하면서 직원에게 현금을 직접 주는 경우는 절대 없다”는 설명이었다.

김 경장이 자동차회사와 통화하는 사이 A씨는 이미 은행 창구에서 현금 2600만원을 인출한 뒤 자리를 떠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씨의 연락처와 직장 주소를 기록했던 경찰관들은 곧바로 순찰차를 몰고 그가 일하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현금을 인출했다면 그다음은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에게 돈을 넘길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대전경찰청과 산하 6개 경찰서는 지역 내 금융기관과 협약을 체결하고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하는 고객이 있으면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했다. [사진 대전경찰청]

대전경찰청과 산하 6개 경찰서는 지역 내 금융기관과 협약을 체결하고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하는 고객이 있으면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했다. [사진 대전경찰청]

다행히 경찰관들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돈을 찾아 사무실로 돌아온 뒤 “검사를 사칭했다면 100% 범죄에 연루된 것”이라는 김 경장 일행의 설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다시 김 경장을 만난 A씨는 “내가 사용하는 게 대포통장이라서 돈은 인출해서 보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검사의 연락을 받았다”고 사실을 털어놨다. 검사를 사칭한 사람에게서 받은 공문(사진 파일)도 꺼내 들었다.

거급된 설득에 "전화받았다" 사실 털어놔 범죄 예방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한 사실을 깨달은 A씨는 김 경장에게 “(믿지 않는데도) 여기까지 찾아와서 설득하고 이해시켜줘서 고맙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고학력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대전시 서구의 한 금융기관에서 70대 여성(노란색 원)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당하기 직전, 출동한 경찰관과 은행직원이 설득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해 7월 대전시 서구의 한 금융기관에서 70대 여성(노란색 원)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당하기 직전, 출동한 경찰관과 은행직원이 설득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김 경장은 지난해 11월에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현금 2억300만원을 인출한 B씨(40대 남성)를 끈질기게 설득해 피해를 예방했다. 당시 B씨는 “범죄에 연루됐는데 무혐의를 입증하려면 (대출)한도가 가능한 대로 대출을 받아서 돈을 보내야 한다”는 검사 사칭 전화를 받고 거액을 송금하기 직전이었다.

경찰 "보이스피싱 갈수록 지능화, 반드시 신고" 

김희주 경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갈수록 지능화하는 추세”라며 “검사과 경찰 등 정부기관을 사칭하거나 범죄에 연루됐다는 전화를 받으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송정애 전 대전경찰청장과 성수용 금융감독원 대전충남지원장이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논의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해 5월 송정애 전 대전경찰청장과 성수용 금융감독원 대전충남지원장이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논의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한편 대전경찰청과 산하 6개 경찰서는 지난해 5월 대전에 있는 각 금융기관과 협약을 체결하고 “고객이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할 경우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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