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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해운담합 결국 962억 과징금…해운업계 거센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동남아 해상 노선에서 120차례에 걸쳐 운임을 담합한 23개 선사에 9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고려해운‧흥아라인‧HMM(옛 현대상선) 등 12개 국내 선사와 11개 외국 선사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해운업계는 “법에 따라 허용된 공동행위였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성명서를 내고 “공정위의 심각한 오류”라는 날 선 반응도 보였다.

15년간 120차례 운임담합

18일 공정위는 23개 선사에 대해 총 962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한국-동남아 수‧출입 항로에서 컨테이너 해상화물 서비스 운임을 담합했다고 결론 내면서다. 국내외 선사의 담합은 2003년 12월부터 2018년 말까지 이어졌다. 120차례에 걸친 운임담합을 위해 541차례의 만남이 이뤄졌고, 이메일‧카카오톡 등으로 대화가 오갔다.

해운업계 노사와 학계, 부산 지역 관련 시민단체가 지난해 7월 5일 부산 중구 마린센터 로비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운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방침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해운업계 노사와 학계, 부산 지역 관련 시민단체가 지난해 7월 5일 부산 중구 마린센터 로비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운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방침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운임 인상을 합의하거나 이를 확인하는 내용은 회의록과 카카오톡 대화 등에 남았다. 해운업계도 공동행위 자체는 인정한 만큼 이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주요 쟁점은 운임 관련 공동행위가 해운법이 인정하는 범위에서 이뤄졌느냐였다. 해운법에 따르면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화주단체와 협의를 한 공동행위는 담합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을 적용 못하게 돼 있다.

주요 선사 과징금 부과내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요 선사 과징금 부과내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업계 반발…“허용된 공동행위다”

23개 선사 등 해운업계가 과징금이 부과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반발하는 게 그 때문이다. 업계는 해운법에 따라 공동행위는 허용돼 왔고, 이미 해수부에 몇 차례에 걸친 신고까지 완료했다는 입장이다. 또 이 같은 공동행위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진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이른바 ‘해운 암흑기’에 생존을 위한 공동행위가 이뤄졌고, 정부 역시 이를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이후 운임이 올라가면서 2018년 한 화주협회가 공정위에 신고하기 전까지 암묵적으로 허용된 관행에 공정위가 칼을 댔다는 게 이들 입장이다. 지난 12일 전원회의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해수부 관계자는 “따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구두로 이야기한 적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선사 관계자는 “운임이 더 내려가면 모두 망하니 서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은 자제하자는 수준의 협의만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고와 다른 실제 합의, 결국 제재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내 ·외 23개 컨테이너 정기선사가 한-동남아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962억 원 부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내 ·외 23개 컨테이너 정기선사가 한-동남아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962억 원 부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선사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차례 운임인상을 신고하긴 했으나 실제 공동행위는 120회가량 이뤄졌고, 그 내용과 시점도 신고와 차이가 있어서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국장은 “2017년 2월에 신고를 하고, 2018년까지 27차례 운임인상을 합의했다. 1회 신고가 27번을 포괄한다는 주장은 타당치 않다”고 말했다. 다만 해운업계에서 8000억원대 과징금을 우려하던 것과 달리 업계 상황과 특수성이 고려되면서 과징금은 1000억원 미만으로 줄었다.

“일·중 심사 종결 않을시 특단 조치” 

해운업계가 제재에 민감한 건 동남아 노선뿐 아니라 한국-일본, 한국-중국 노선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남아서다. 공정위는 이들 노선의 공동행위에 대해서도 이번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해운법 개정을 둘러싼 해수부와의 논의가 ‘시즌 2’로 흘러갈 수 있다. 해운법 개정안은 선사 공동행위 규제를 공정위가 아닌 해수부가 하는 내용이 골자로 국회에 계류돼있다. 공정위와 해수부는 제재는 공정위가 하되 공동행위 허용 절차를 명확히 하는 쪽으로 개정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해운산업이 향후 공동행위를 정상 수행해 수출화물이 원활하게 수송될 수 있도록 해운법 개정안이 국회를 조속히 통과되기를 탄원한다”며 “한-일, 한-중 항로 심사 종결을 요청하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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