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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월급 주려 아들 적금 깼다"…'지원금 0원' 자영업자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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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부 자영업자 손실보상 ‘사각지대’

지난 17일 오전 서울시내 식당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지난 17일 오전 서울시내 식당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인천시 부평구에서 뷔페를 운영하는 50대 노성창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 번도 정부가 주는 자영업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든 탓에 2년 가까이 적자였지만, 소기업 기준인 '3년 평균 매출액 10억 원'을 넘어선 탓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노씨는 “25~30명의 고용을 책임지면서 인건비만 월 8000만 원씩 나간다”며 “여기에 재료비 50%, 임대료, 부가가치세까지 내면서 월 3000만~4000만 원 적자를 봤다”고 말했다. 노씨는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직장에서 사람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대출을 내다 결국 아들 적금까지 깨야 했다”고 털어놨다.

손실보상, 버팀목자금…“철저히 외면”

코로나19 이후 주요 소상공인 지원책.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주요 소상공인 지원책.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상에서 소외된 자영업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방역 필요성에 공감해 적극적으로 협조했었다”며 “공권력으로 영업권을 제한했으면 매출 규모에 상관없이 보상해야 마땅한데 소상공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주장한다.

17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1년 4분기-2022년 1분기 손실보상’ 대상을 살펴보면 ‘2021년 12월 6일~2022년 1월 16일까지 영업시간이 제한된 소상공인·소기업 55만 개사’로 돼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총 500만 원의 손실보상금을 선지급하고, 추후 정산에서 실제 산정액이 이보다 적으면 차액을 5년간 나눠 1% 금리로 상환하는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손실보상금을 받으려면 중소기업기본법상 ‘소기업’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숙박 및 음식점업·교육 서비스업 등의 경우 연 매출 10억 원 이하,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등은 30억 원 이하, 도매 및 소매업 등은 50억 원 이하가 기준이다. 운송장비 제조업, 건설업 등은 80억 원 이하, 식료품·음료 제조업 등은 120억 원 이하여야 한다.

“직원 30명 줄여도 6억 대출”, “장사 접어”

2021년도 3분기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현장 접수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3일 서울 동작구청 2청사를 찾은 소상공인들이 손실보상금 신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도 3분기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현장 접수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3일 서울 동작구청 2청사를 찾은 소상공인들이 손실보상금 신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실보상금 외에도 정부의 버팀목자금플러스(2021년 3월), 1·2차 소상공인희망회복자금(2021년 8~10월), 2021년 3분기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등 정부의 주요 지원책은 모두 소상공인·소기업이 대상이었다. 이보다 앞서 지급된 새희망자금(2020년 9월), 버팀목자금(2021년 1월)은 기준이 ‘연 매출 4억 원 이하’로 소기업보다 대상이 좁았다.

경기도 고양시와 경남 진주시에 일식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김진태(52)씨는 “코로나19 이전 순이익의 40%가 넘는 종합소득세에 부가가치세, 주민세, 직원들 4대 보험까지 의무를 성실히 했지만 2년간 정부 보상은 없었다”며 “점포당 직원을 15명씩 줄였지만,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워 6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소상공인보다 수가 적다 보니 소외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개인·법인 차별”, “소기업 기준 6년째 불변”

6년째 제자리 걸음인 '소기업' 기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6년째 제자리 걸음인 '소기업' 기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과 지방에서 음식점과 유흥주점, IT 개발 회사를 동시에 운영하며 법인 사업자를 낸 박준선(30)씨는 “점포별로 매출을 따로 계산하는 개인과 달리, 법인은 모든 점포의 매출을 합산한다”며 “이 때문에 정부 지원금은 한푼도 못 받았다. 오늘 점포 2개를 모두 정리하고 나니 목이 메었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에서 회양념집을 운영하는 이창민(25)씨는 “최저임금과 물가는 매년 올랐는데 소기업 기준은 수년째 그대로인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2016년 시행된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의 ‘주된 업종별 평균 매출액 등의 소기업 규모 기준’은 현재도 거의 바뀐 게 없다. 그 사이 최저임금은 6030원에서 9160원으로 3130원(51.9%) 올랐고, 소비자물가는 2016~2021년 연평균 1.3%씩 올랐다.

이씨는 “직원 10명의 급여와 월세·관리비만 해도 매월 9000만 원 이상이 빠진다”며 “어느새 못 낸 월세가 보증금을 꽉 채워 받을 수 있는 돈이 없고, 옮기기도 힘든 상황이다. 직원들 4대 보험은 카드깡이라도 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3차 재난지원금 당시엔 5인 미만 사업장 기준을 못 채워서, 지금은 소기업 기준을 못 채워 보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회, “손실보상법 개정할 것”

최승재 국민의힘 소상공인위원장은 지난 10일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손실보상법)’ 대표발의를 예고하면서 “손실보상 심의위 15명이 700만 소상공인의 명줄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실보상법 제12조에 따르면 중기부 장관이 손실보상 심의위 심의를 거쳐 중소기업에도 손실보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연 매출 10억 원 초과 중·대형 업소를 손실보상에서 제외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내부적인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된 안(案)은 없는 상태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등 8개 단체는 “지난해 7월 손실보상법이 개정돼 집합금지·영업제한으로 인한 손실 보상 근거가 신설됐지만, 법 시행 이전 발생한 피해는 제외했다”며 7월 이전 피해에 대한 소급적용을 촉구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중소상인·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헌법소원 제기 1년, 위헌 소지 가득한 국회·정부 손실보상 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중소상인·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헌법소원 제기 1년, 위헌 소지 가득한 국회·정부 손실보상 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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