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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후보들의 족쇄 ‘내부의 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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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연초 회견을 앞두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2척 백의종군 정신으로 다시 뛰자”는 톤의 장중한 원고 초안을 받아들었다. 당의 오랜 스피치라이터의 작품. 그러나 콘셉트가 무겁고 올드하다는 판단에 그는 과감히 이를 뜯어고친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인 청년의 목소리가 곧 국민 목소리” “청년 관련은 간부들 대신 다 청년들에게 맡기겠다”는 콘셉트였다. 이후 단 한 줄의 “주적은 북한” “여성가족부 해체” 선언과 “병장 월급 200만원” “전기차 충전료 동결” 등의 동영상 쇼트폼으로 디지털 세대와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 2030 자문단의 아이디어다.

갈등을 겪던 이준석 대표와의 포옹을 위해 그가 울산으로 내려갈 즈음 당내의 비판 문자가 적지 않았다. “아들뻘 철부지 애한테 체통도 없이 굽신거리느냐.” 50~60대 이상, 영남권 터줏대감들이었다. 오랜 당의 주인들이다. 지금도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에서 앞선 세대는 60대(41% 대 36%)와 70대 이상(47% 대 25%, 한국갤럽)뿐. 장·노년층 이상에게 기생해 온 이 당은 젊은 세대의 변화와 쇄신 욕구에 응답할 필요나 노력은 거의 없었다. 관료·법조인·폴리페서·명망가 등 이미 세속의 성공을 거둔 이들이 최고권력자의 금배지나 벼슬 낙점을 받아 힘과 명예를 이어갔던 ‘나의 이익’이 이 당의 DNA였다. 모두를 위한 자기 희생, 헌신보다는···. 그러니 구들장 좀 따스해지면 늘 도지는 게 아랫목 자리싸움이었다. “나는 오직 후보 지시만 따를 뿐”이라는 당 간부의 한마디는 이 당의 영혼을 압축한다.

당의 기득권꼰대 체질이 윤석열 적
이재명 적은 당내 골수운동권 이념
윤, 세대소통과 기득권 비우기 관건
이, 운동권이념 단절 실용이 승부처

미래의 보수정치 재목을 키우려는 시스템과 문화는 애초 어려운 토양이었다. 친이·친박 투쟁, 당대표가 공천 옥새를 들고 사라진 친박·비박의 알력, 탄핵 이후 분당 등 내 앞길 챙기기가 자연스러웠다. 2040들에겐 탐욕스러운 ‘기득권 꼰대’의 상징. 신한국당부터 일곱 차례 당명을 바꿔 분장해 왔지만 그 영혼이 바뀌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이겨줄 사람조차 없으니 여권 검찰총장까지 후보로 입양해야 했다. 오죽하면 윤 후보조차 “정권은 교체해야겠고, 민주당엔 들어갈 수 없어 부득이 입당하게 됐다”고 토로하는가.

윤석열의 최대 적은 이 당의 켜켜이 쌓인 기득권 체질이다. 세상 개혁에 앞서 내부 분골쇄신이 먼저다. 요체는 혁신적인 기득권 의식의 해체. 청와대의 민정수석 폐지와 조직 축소, 좋다. 나아가 ‘윤핵관’이라는 주변 실세들의 집권 후 정부 임명직 자제, 당 소속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 캠프 출신의 낙하산 근절 선언 등 모든 걸 비워야 다시 채워질 당이다. 대통령이 이 기득권 탐욕의 도구로는 쓰이지 않겠다 각인시켜라. 청년 사랑? 비위만 맞출 게 아니다. 후대의 멍에가 될 연금의 개혁, 양질의 일자리 확대 등 본질에 승부를 걸 시간이다.

이재명 후보의 족쇄 역시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바로 172석의 공룡 민주당과 진보 진영 내부의 간섭과 통제다. 이 곳의 영혼의 주류는 ‘아스팔트 운동권’ 출신들. 진보좌파 이념의 586 호위무사들 말이다. 경선 당시 이낙연 후보에 대해서조차 주류들은 “명문학교, 메이저 언론 출신으로 DJ 눈에 들어 호남의 민주당 4선과 도지사, 총리로 순탄했지 민주화를 위해 고생 한번 했느냐”는 뒷담화를 이어가곤 했다. 이재명 후보에게도 마찬가지. “정치 지망 변호사라는 제도권 출신일 뿐 우리가 맨땅에서 고생할 때 고시 공부나 하며  돌 한 번 던져봤겠느냐”는 속내들이 나온다. 지금이야 지지도 1위를 오가며 별 대안도 없으니 잠복 상태인 이 당 심연(深淵)의 굳건한 오만이다.

이 후보가 내건 ‘실용주의’와 ‘국민통합’, 좋다. 내부의 벽은 만만찮다. 중과세 1년 유예, 종부세 완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의 변화나 북한 미사일에의 “도발” 규정 등 중간으로 나아갈라치면 어김이 없다.  “부자 감세” “네가 감히 당의 영혼을 무너뜨리느냐”는 주인들 반발이 터진다. 당 오너들 구미에 맞춘 ‘국토보유세’를 외치다 다수 국민의 반발이 커지니 후보가 물러난다. 다시 슬그머니 ‘토지이익배당제’로 재포장해 타협하기 일쑤다. 아니 사유 토지에 세금을 거세게 때려 기본소득으로 다 나눠준다니…. 이게 그 ‘사회주의 유령’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다, 안 한다” 늘 오락가락하니 “무슨 좋은 말을 해도 믿지 못하겠다”다. 진정성과 신뢰가 제자리니 1등이래야 늘 37~40%의 진영 내 박스권(이번 대선 승리의 추산 최소 기대치는 43%)이다.

진정 실용과 통합을 추구한다면 이 후보가 단호히 절연할 대상은 당내와 진영의 구시대 좌파, 수렴청정을 노리는 운동권 출신들의 꼰대 이념이다. 탕평 인사, 국민대통합의 구체적 디테일을 밝혀라. 그래야 이재명을 믿게 된다. ‘기계적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으로. 세금 많이 거둬 뭘 해달라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국가 개입과 규제의 축소를 통한 신산업과 비즈니스의 자유로운 성장, 공급 늘린 부동산의 시장경제적 해결, 이게 신기루의 이념 아닌 진짜 실용 아니겠는가. 후보들 앞길에 족쇄 채울 적은 늘 내부에 있다. 니케의 미소가 향할 쪽은 이를 극복해 낼 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