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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미, EU·인도 등과 손잡고 중국 압박 가속 페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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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이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하기 직전,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휴전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2년 전 이맘때(2020년 1월 15일)다. ‘1단계 무역협정’으로 불리는 이 휴전협정의 핵심은 중국이 향후 2년간 일상적 무역거래 이외에 미국산 2000억 달러를 추가 구매하는 약속이다. 그 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중국은 약속을 지켰을까. 공식자료는 아직 없지만, 지난해 11월까지의 미국 통계(피터슨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구매 물량은 약속 물량의 60%를 조금 넘는다. 그로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한 달 사이에 중국이 전광석화처럼 수입 물량을 증대했다는 보도는 없다. 결국 중국은 약속 이행에 실패했다. 중국의 변명은 코로나19로 인한 천재지변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코로나19의 진원지이면서도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 반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중국이 아니던가.

2년 전의 무역협정 안 지킨 중국
미국 제품 추가구매 60%만 이행

바이든, 2단계 협상 진행 안할 것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품목 강화

11월 중간선거 등 시간 많지 않아
‘더 강한 미국’ 인프라 확대 나설듯

게다가 농산물·에너지·공산품·서비스 등 각 분야에 할당된 구매 물량은 애초부터 시장 수요와는 무관한 인위적인 것이었다. 중국 정부의 구매 약속과 무역전쟁 휴전을 맞바꾼 것이었다. 구매 약속으로 중국이 벌어 둔 2년간의 휴전은 끝났다. 협정이행에 실패한 중국을 미국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은 결국 체제전쟁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

미국 통상협상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미국이 협정 이행을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는지 무수한 사례를 나열할 수 있다. 협정 불이행을 구실로 상대국에 고강도 시장개방을 압박해 온 미국이다. 중국은 그런 미국에 딱 걸려들었다.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관세 부과? 경제 제재? 2022년 벽두부터 미국과 중국은 또다시 무역전쟁을 시작할 것인가.

구매 약속 이행을 지키기 위해 중국에 기간을 연장해 주는 완화정책도 가능하다. 유화정책은 미국 내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단적인 파쟁에도 불구하고 ‘중국 때리기’는 초당적인 합의가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가 중국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정치지형에서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는 상상하기 어렵다. 동시에, 중국의 약속 불이행은 미국의 결기를 시험해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목표 이행 못한 중국의 대미 수입

목표 이행 못한 중국의 대미 수입

그래서 중국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고관세 부과를 위협하면서 미구매 물량의 조속 구매 압박을 할 수도 있다. 1단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 수입품의 3분의 2에 대해서 여전히 고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제품에 대한 고관세가 자신의 지지 기반인 서민층의 장바구니 물가를 올려 지갑을 얄팍하게 한다고 트럼프를 비난하던 바이든은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이후, 트럼프의 고관세가 쌓아 둔 고관세 장벽을 그대로 두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년 전 미·중 합의는 1단계 합의였다. 설령 중국이 구매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더라도, 미·중간 갈등의 근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두 나라가 무역전쟁을 벌이는 근본 이유는 공산당 주도 비시장경제 때문이다. 덩치 큰 국영기업들이 경제 인프라를 독차지하고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인해 중국기업에 편파적으로 유리해졌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디지털 대전환기에 중국 빅테크 기업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빅데이터를 무궁무진하게 가진 중국은 인공지능(AI)·안면인식·5세대(5G)이동통신 기술을 안보 분야로 연결하고 있다.

미·중, 2단계 협상 나설 명분 없어

미·중 무역전쟁은 기술전쟁과 군사전쟁에 이어 결국에는 체제전쟁으로 이어진다. 미·중 패권경쟁의 복합구도다. 무역합의 후 지난 2년간 중국공산당의 경제통제권은 더욱 강화됐다. 사이버 공간을 장악하는 중국 빅테크 기업의 자율권은 극도로 약화했다. 체제 안정성이라는 지상 목표 아래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은 중국 규제 시스템의 낙후성을 지적한 알리바바 마윈의 처지가 상징적이다.

탈냉전 시기 미중관계의 변화 추이

탈냉전 시기 미중관계의 변화 추이

미국은 협상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기세등등한 트럼프를 향해서도 “숫자는 가능하지만, 시스템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중국이다. 1단계 합의라는 표현은 그래서 동상이몽이었다. 2020년 11월, 코앞에 닥친 선거를 의식해서 자신의 지지계층에게 “나만이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고 기염을 토하고 싶었던 트럼프. 미국의 높아지는 고관세 장벽을 피하고 싶은 시진핑. 이 둘 간의 이해타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바로 1단계 합의였다.

서구체제와의 격돌을 선언한 시진핑에겐 중국 시스템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2단계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에게 1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2편의 개봉박두를 예고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 트럼프는 퇴장했다. 바이든이 중국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미 중산층 일자리 창출도 급선무

바이든은 중국과 2단계 협상을 진행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식물화된 세계무역기구(WTO) 다자체제를 복원해 중국의 구조적· 행태적 문제를 다룰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러기엔 바이든에게 부여된 시간은 턱없이 짧다. 트럼프가 시종일관 미국의 근육질 힘에 의존하면서 미국 홀로 중국을 몰아세우기에 열중했지만, 바이든은 가치동맹을 깃발을 내걸고 반(反)중국 연합전선을 구성하려고 한다. 반중국 연합이 중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지만, 중국은 이런 방식의 협상에 나설 자신만의 명분을 찾지 못할 것이다.

집권 첫해,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소재의 중국 의존적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착수한 바이든. 그는 집권 2년 차에는 미국 중심 공급망에 참가할 연합국가들을 물색하고, 연계를 본격화할 구상이다. 유럽연합(EU)과 연계하는 무역기술위원회(TTC), 인도-태평양 경제협의체가 구체화할 전망이다. 미국 의회에서 협상 권한을 받아야 하고, 협상타결 후 의회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 기존의 통상협상 방식으로는 디지털 패권경쟁과 코로나 팬데믹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국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 바이든의 판단이다.

EU 및 인도·태평양 동맹국들과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품목 공급망을 구축할 때 중국을 배제하는 중국 포위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의 자체 역량 강화는 바이든이 더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이다. ‘BBB(Build Back Better)’로 명명된 미국의 인프라·인적자산에 대한 투자 확대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을 더 강하게 건설하자”로 풀이되는 BBB는 미국의 혁신역량 강화와 중산층의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겨냥한 바이든의 회심의 카드다.

2022년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국내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가을에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를 확정하게 된다. 11월에는 미국 의회 선거(중간선거)가 있다. 하원 전부, 상원 3분의 1이 선출 대상이다. 중간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의 중국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흔들리는 세계화 시대, 한국의 선택은?

냉전 종식 후 30년간 계속된 ‘국경 없는 세계화’가 흔들리고 있다. 원천기술 개발-핵심소재-조립의 전 과정에 걸쳐 비용 최소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른바 패권경쟁 시대다. 경제운영에서 효율성이 지고지선인 시대에서 안정성이 더 중요해진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것은 주권국가가 통제 가능 영역 내에 생산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체제가 다른 국가들이 기술-안보 연계가 높은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을 공유하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 분열의 단층선 위에 한국이 서 있다.

아예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판이다. 효율성만이 경제운영의 궁극적인 잣대였던 탈냉전 시대의 관념과 경험으로는 미·중 신냉전 시대에 생존과 번영을 모색할 수 없다.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세계로 펼쳐졌던 핵심부품의 공급망 재편을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효율성에서 안전성으로 경제운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국가의 정책역량과 상상력이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외생적인 충격은 피할 수 없지만,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는 국가의 실력에 달려 있다. 너무나 분명한 혼돈의 시대에 협력과 공존을 외치는 것은 다가올 충격이 오지 않는다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다. 연말에 본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의 끔찍한 결말은 영화로만 존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