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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삶으로 말하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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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밤이면 영하 20도나 되는 추운 태백산 구마동 골짜기에서 두 달간 동안거를 지내고 있다. 깊은 밤, 마당으로 나서면 차가운 공기가 머리를 투명하게 한다. 공기도 투명한지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하다. 어디에서든 별을 보면 어릴 적 한 여름밤 평상에 누워 보았던, 까만 하늘에서 초롱초롱 빛나던 수많은 별에 가슴벅차하던 생각이 난다.

해남 미황사의 하늘에도 별이 참 많았다. 그 별들을 아이들 가슴에 담아주고 싶어서 20년 동안 한문학당을 열어 어린이들을 초대했다. 너른 절 마당에 푹신한 포장을 깔고 드러누워 1분 동안 눈을 감게 한 다음, 전등불을 모두 끄고 눈을 뜨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슴에 담아둔 별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 높은 산이라 조금만 눈을 붙여도 머리가 맑다. 새벽 4시, 불단에 향 한 줄기 사루고 참선정진을 위해 맑은 마음으로 좌복에 앉았다.

태백산 연수 스님이 남겨놓은 것
화전민 집을 수리해 25년간 정진
농사 짓고, 공부하는 수행자의 삶

두 해 전까지 이 공간에 살았던 연수 스님은 25년 전, 화전민이 살던 집을 수리하여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다는 뜻의 무학대(無學臺)라고 이름 붙이고, 홀로 수행하는 선방을 만들었다. 오롯이 참선수행에만 전념하다가 어느 날 소리 없이 76세로 입적하시니,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제자도 두지 않아 절집안의 조카뻘이 되는 내가 유품을 정리해야 한다. 남겨놓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큰 공부거리다.

스님은 고고한 학처럼 세간사에 섞이지 않고 군더더기 하나 없이 꼿꼿한 수행자의 표상으로 살았다. 현재의 제방선원 조실 스님들과 나란히 공부의 길을 걸었으나 대중에 나서는 일이 없이 묵묵한 수행자 모습만 보여주었다.

산중의 난방 연료는 아직도 장작을 사용한다. 장작불을 들이노라면, 행자 시절 3년 동안 겨울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지게로 옮기고, 도끼질하며 지긋지긋하게 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는다. 장작을 많이 준비해 놓으면 산중의 겨울은 편안하다. 토굴살이 스님네들은 토굴을 떠날 때 다음 사람을 위해 땔감을 충분하게 구비해놓고 떠나는 풍습이 있다. 주인 없는 무학대에 마른 장작이 창고와 부엌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스님은 살아있는 나무를 한 번도 쓰러뜨린 적이 없었다. 봄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설해목들만 모아 땔감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생명을 해치지 않고 살면서 떠나고 맞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창고에는 괭이·쇠스랑·호미·삽 등 농기구들이 고스란히 갖춰져 있다. 밭 한 켠에는 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풀과 낙엽을 모으고, 큰 통에 음식쓰레기를 모아 자연발효 거름을 만들어 두었다. 밭에 채소뿐 아니라 옥수수·고구마·감자 등 갖은 작물을 심어 자급자족했다.

선방 한 켠, 직접 판자로 엮은 책장은 한문경전과 논서를 비롯하여 수행에 관련된 일본어·영어·빨리어 원서들로 빼곡하다. 독학으로 영어·일어·중국어·빨리어까지 습득하여 필요한 모든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1000여 권이나 되는 책에는 밑줄 표시를 했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요약해놓은 노트가 37권, 선수행과 호흡법, 요가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강의록 세 권과 직접 그린 선종 계보와 마음을 89가지로 정리한 강의록 한권이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자신의 수행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잘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한 흔적이다.

스님은 전북 부안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2학년 재학 중에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금강경·화엄경 등 대승경전의 심오한 경지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무기고에서 촛불을 켜고 금강경을 보다가 들켜서 15일 영창생활을 하게 된 기막힌 에피소드도 있다. 제대 후 그 길로 출가하여 25년은 대중들과 함께 선원에서 수행하고, 25년은 태백산에서 살았다. 최소한의 물질로 자급하면서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또 전하고자 했던 그 마음이 느껴진다.

두 해나 집을 묵혀 두었어도 묵은 먼지만 털어내니 온기가 감돈다. 스님을 모시고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남긴 흔적만으로도 그분이 경영했던 삶의 질서를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점심때까지는 참선하고, 오후에는 나무하고 도량을 다듬는 울력을 하며, 밤에는 책 한 권씩을 읽어내는 것이다. 오랫동안 가꾼 공간에는 이렇게 따르는 길이 있는 법이다. 하루하루 그 길을 따르니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안으로 돌리게 되고, 모든 행동도 세밀해졌다. 밥하고 반찬을 만드는 것, 불을 때는 것, 향불 하나 피우는 것, 걸음을 걷는 모든 순간이 펄펄 살아 숨 쉬고 있다. 스님도 이렇게 살았으리라. 스님이 남겨둔 흔적을 좇으며 삶에 정성을 담는 공부에 집중하노라면, 어느새 하루가 열리고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