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세계 62위로 추락한 ‘국민행복지수’

중앙일보

입력 2022.01.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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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다. 국민이 한결같이 바라는 바로 그 행복을 국정 목표로 처음 제시한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국민 행복 10대 공약’을 제시했고, 취임 후에도 ‘국민 행복’을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로 추진했다.

그랬던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오히려 점점 더 나빠졌다. 2013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조사 대상 156개 국가 중 한국은 41위였는데 2015년 47위, 2016년엔 58위로 나빠졌다. 국민 행복을 국정 목표로 삼는 정부에서 오히려 더 나빠진 이유는 아마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 행복 공약을 제시했지만, 실질적 추진 의지가 없었기 때문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예산 늘린다고 행복 따르지 않아
삶의 질 위주로 국정운영 바꿔야

실제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내세웠던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 비전은 정권 출범 뒤에는 ‘국민 행복’이 빠진 채 ‘희망의 새 시대’로 바뀌었다.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이 최우선 정책목표가 됐고, 친박·진박 논란, 비선 실세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급기야 2016년 많은 국민이 광장에 몰려나와 ‘이게 나라냐’를 외쳤고, ‘나라다운 나라’를 공약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는 물론이고 취임 1, 2, 3주년 기념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랬던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 행복지수는 더 나빠졌다. 2018년 57위였던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2019년 54위로 잠깐 개선되는 듯했지만 2020년 61위, 2021년엔 62위로 참담하게 나빠졌다.

이런 성적표는 대통령의 추진 의지 부족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 국가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지향하며 제도를 신설·강화하고, 공무원을 역대 최대로 늘리며 예산도 역대 최대 600조원을 돌파했다.

그런데 왜 국민의 행복 수준이 더 떨어졌을까. 그 이유는 국정을 제도·공무원·예산 등 투입 중심으로 운영하고 국민의 행복이라는 결과를 중심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이 결정된다고 의도한 효과를 자동으로 내는 것은 아니다. 정책의 집행 과정에 많은 집단과 조직이 개입하면서 왜곡과 저항이 발생한다. 그래서 의도한 효과가 발생하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 최저임금제나 부동산 정책 등에서 보듯 정책 목표와 완전히 반대되는 역설적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국정은 계속 투입 중심이다. 예컨대 예산은 행정부·국회 등이 모두 관심을 집중하지만, 그 예산으로 실제 이루려던 목적을 달성했는지 따져야 할 결산은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수없이 많은 법규와 제도,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예산과 같은 투입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 우리 삶의 질과 행복 그 자체가 관심이다. 박정희 정부의 월별 수출진흥 확대 회의처럼 우리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수준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진도를 점검하며 대안을 탐색하는 자리를 갖길 원한다. 주인으로서 대리인인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자들이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를 위한 일을 하고 있기는 한지, 어느 정부 어떤 지방자치단체가 더 많은 성과를 냈는지 살펴보고 이를 근거로 일을 맡기고자 한다.

이렇게 하려면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통계를 생산하고 공개해야 하는데, 지금 국정운영의 실상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삶의 질은커녕 기본적인 소득통계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차기 정부는 빅데이터 시대에 걸맞게 투입 중심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이라는 결과 중심으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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