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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방역패스 반대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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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기독교계 중학교에 다니는 A양은 종교 수업시간을 싫어한다. 다양한 종교를 다루는 게 아니라 기독교와 성경 말씀만 가르치기 때문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는 등의 금지로 가득한 십계명을 들으면 땐 "싫은데요"라는 반발심이 생긴다고 한다. 반발심은 사춘기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청개구리 같은 마음, 즉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을 땐 그 반대로 하고 싶은 반대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최근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프랑스가 보건패스를 도입한 이후 접종률 자체는 늘었으나 백신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줄이지는 못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8월부터 접종증명서 혹은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술집·도서관·병원 등에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2회 이상 접종 완료율은 패스 도입 이전인 지난해 7월 49%에서 12월 중순 89%로 증가했다. 그러나 굳이 공공시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고령자 등 코로나 19 취약계층의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백신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패스 도입을 기점으로 44%에서 61%까지 뛰었다. 백신을 맞은 걸 후회하거나, 나아가 강제로 맞아서 화가 난다는 응답률도 치솟았다.

 연구진은 접종을 강요받는다고 느낄 경우 백신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리라는 믿음 탓에 ‘노시보(nocebo)’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시보는 올바른 약을 처방했음에도 환자가 의심하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심하면 없던 병도 생겨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가짜 약을 먹고도 환자가 약효를 믿으면 병세가 개선되는 플라시보 효과와 정반대 현상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백신 1차 접종 시 부작용을 겪었다는 응답자가 패스 도입 이전 34%에서 이후 57%로 급증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한원교)는 지난 14일 서울의 대형마트 및 백화점, 청소년 관련 시설 등에 적용된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했다. 법원은 방역패스의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생활필수시설 미접종자 출입 제한이나 미성년 방역패스는 과도한, 혹은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전국의 생활필수시설 방역패스를 철회했다. 방역 심리 측면에선 다행스러운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