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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약속을 지키는 나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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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191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임태호씨는 1940년 11월 일본 니가타(新潟)현의 사도섬으로 갔다. 산속 오지에 있는 광산, 지하에서 광석을 채굴하는 게 임씨의 일이었다. 거의 매일 낙반 사고가 일어나 “오늘은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 공포에 떨었다. 작업 중 큰 부상을 입었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 두 번째 사고로 손을 크게 다치고 나서야 탈출을 결심했다. 1997년 일본에서 사망한 그는 생전 구술에서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는 동안 (일본으로부터) 성의있는 진정한 사죄를 받길 원한다”고 했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이 2019년 펴낸 ‘일본지역 탄광, 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자료집에 등장하는 사연이다. 임씨는 사도광산 징용자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육성으로 진술한 유일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이 광산으로 끌려와 일한 조선인 노동자는 약 1200명으로 추정된다. 임씨의 사연만으로도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비참한 환경이 생생히 드러난다.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지워졌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역사를 제외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등에서 노동자를 강제동원해 전쟁 물자를 생산했던 어두운 역사는 쏙 빼놓은 채 세계 최대 금 산출지였던 에도 시대(1603~1867)까지로 기간을 한정했다. 이런 안이 문화청 문화심의회를 통과했고, 다음달 1일까지 정부가 유네스코 신청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한국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면서, 일본 정부도 고심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도광산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건 전례 때문이다. 일본은 2015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을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혁명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이 곳에서 강제노역한 이들의 희생을 알리는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의 관광해설사들은 이런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후속 조치라며 2020년 도쿄에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도 산업화 과정에 대한 찬양으로만 채워졌다. 유네스코까지 나서 이런 일본에 ‘강한 유감’을 밝혔으나 요지부동, 아직 어떤 추가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이 최근 한국을 공격하는 주된 프레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다.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프레임은 일본 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본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해의 역사를 성실히 기록하겠단 약속을 지킬 때까지 사도광산 등재 신청은 보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