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전국 건설현장의 불법 재하도급 조사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HDC현대산업개발 서울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광역시 아파트 공사장 붕괴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HDC현대산업개발 서울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광역시 아파트 공사장 붕괴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경찰, 광주아파트 붕괴 대리시공 포착

공기 단축 부실시공, 현산뿐이겠는가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39층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장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꼬박 1주일이 지났다. 이번 사고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노린 불법적인 공기 단축과 부실 건축자재 사용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광주경찰청 수사본부가 불법 재하도급에 따른 대리 시공 의혹을 포착해 주목된다. 화정동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편법적인 재하도급 형태로 이뤄진 것이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기에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외벽이 찢어지듯 붕괴한 사고 건물의 콘크리트 타설 업무는 HDC현대산업개발과 골조 계약을 한 전문건설업체 A사가 맡았다. 그런데 사고 당시 타설 작업 중이던 작업자 8명은 모두 A사 소속이 아니라 A사에 펌프카 장비를 빌려주는 임대계약을 맺은 B사 소속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재하도급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설 현장에 여전히 관행으로 남아 있는 불법 하도급 형태의 ‘대리 시공’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받는 부분이다. 만약 대리 시공 와중에 부실시공이 이뤄져 참사 원인이 됐다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겨울철에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굳히기)하려면 최소 10~14일의 공사 기간이 필요한데 불법 재하도급이 벌어지면 1개 층을 시공하는 데 겨우 6~10일을 투입한다. 이번 사고 현장 공사일지에서도 불과 6~7일 만에 1개 층을 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불법이 버젓이 벌어지면 결과적으로 부실 시공의 위험을 키우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붕괴 아파트의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이 사고 책임을 지겠다며 어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종자 수색이 진척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물러날 것이 아니라 사태를 끝까지 수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급 순위 톱10에 들어가는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인 현대산업개발 경영진의 안전불감증은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해 6월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광주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 붕괴사고 이후 7개월 만에 또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광주시 학동 사고 이후 특별감독에서 현대산업개발에 33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고용노동부의 솜방망이 처분도 문제가 있다.

경찰은 이제라도 현대산업개발 광주 지역 공사장에서 안전사고가 잦은 이유를 규명하고, 국토교통부는 콘크리트 양생이 더딘 겨울철에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할 개연성이 높은 전국의 고층 건축물 시공 현장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현대산업개발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 관행처럼 퍼져 있는 불법 재하도급을 조사해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