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이 무너져내린 건물 뒤쪽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출입통제선 주변으로 안전모를 쓴 소방관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난 14일 오전 7시, 그렇게 시작된 구조 활동은 오후 8~10시쯤에 끝났다. 철수하는 소방관들의 작업화는 시멘트 가루 범벅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6명이 어이없이 사라진 광주광역시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그날 오후 6시 49분쯤 실종자 한 명이 지하 1층에서 발견됐다. 중앙119구조본부와 광주 특수구조단 인력 200여명이 떨어진 콘크리트 잔해물과 늘어진 철근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가까스로 거둔 ‘안타까운 성과’였다.
철근 전기톱으로 자른 뒤에야 생사 확인
취재진의 진입이 차단된 사고 현장에서 전해진 구조 상황은 예상보다 열악했다. 현대산업개발이 크레인 등의 장비와 지반 보강 등의 기술적 지원을 하지만, 구조와 수색의 많은 부분은 소방관의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추가 붕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괴물 같은 콘크리트 더미 앞에 삽이나 전기톱, 펜치처럼 생긴 절단기를 든 소방관들이 철근을 하나씩 썰고 끊어가며 잔해를 제거했다.
구조견과 핸들러는 철근이 정수리 바로 위까지 드리워진 고층부를 오갔다. 잔해물은 무릎까지 높이로 쌓여 있었다.
15일과 16일에는 구조 작업 중 고층부에서 낙하물이 떨어졌다. 16일에는 종일 나무가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불어 7회의 낙하물이 발생했다. 그때마다 대피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대원들은 철수와 수색을 반복했다.
구조 현장과 그 주변에서는 한숨이 이어졌다. 붕괴한 건물 안에는 생사 불명의 실종자들이 7일째 갇혀 있었고, 그들이 다칠 우려도 제기됐다. 처음으로 발견된 실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소방관들은 전기톱으로 철근을 잘라야 했다. 실종자의 사망 소식이 발견 시점보다 한참 늦게 전해진 이유다. 문희준 긴급구조통제단장은 “매몰자가 있는 지점은 콘크리트, 철근, 구조물들이 뒤섞여 있는데 구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해가 지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관 안전 대책 요구한 실종자 가족들
실종자 가족 대표 안모씨는 “수색에 방해가 될까 봐 소방관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들을 달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소방관들의 몫이다.
크레인이나 굴삭기 등 중장비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인간이 만든 재난의 현장은 예측하기 힘든 위험이 도사리는 정글보다 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머리 위에서 언제 낙하할지 모르는 콘크리트 잔해와 날카롭게 찢겨나간 차가운 철근 속에서 현장의 사람들은 기대와 실망, 의지와 무기력이 교차하는 감정과도 싸우고 있었다. 수색이 장기화하자 17일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무리한 구조작전으로 인한 또 다른 희생을 원치 않는다. 소방대원과 근로자들의 안전과 충분한 휴식, 안전대책을 보장하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순직은 직업적 숙명 아니다”
최근 이어지는 사건·사고 현장은 소방관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악전고투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소방노조가 17일 오후 2시 30분 청와대 앞에 선 이유는 그래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299명의 소방관은 평택항 물류센터 화재 등 반복되는 순직 사고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은애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노조 위원장은 “반복되는 순직 사고를 그저 직업상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없다. 국민이 있는 한 소방관은 어떤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현장으로 달려가겠지만, 소방관이 그저 재난현장을 수습하는 도구는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20년간 화재진압 업무를 해 온 권영준 소방공무원노조 서울본부 중부지부장은 “해마다 반복되는 동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흡기 질환과 근육 파열을 일상으로 여기며 사는 소방관들이 죽음의 공포와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