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도 긴장…M&A 암초 된 자국경제 중심주의

중앙일보

입력 2022.01.17 17:42

업데이트 2022.01.18 08:08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진 대우조선해양]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자국 경제 중심주의’가 암초로 떠올랐다. 자국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되면 아예 M&A의 싹을 잘라내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추진 중인 한진그룹이다.

‘K메가해운’ 무산에 한진그룹 긴장

17일 정부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불승인으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M&A가 가로막히자 국내 항공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구상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애초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의 합병은 국내 조선산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우산 아래서 출발했다. 2015년을 전후로 현대·대우·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빅3 업체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산업은행을 앞세워 사실상 정부 주도로 합병을 결정했다.

EU가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불승인한 명분은 시장 독과점이다. LNG 운반선 분야에서 양사 통합 시 시장 지배력이 커지고, 결국 선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EU가 회원국의 산업 경쟁력도 고려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선사에 선박 건조를 맡기는 해운사 입장에선, 대형 조선사가 하나로 통합하면 손해”라며 “해운사와 조선사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EU가 관련 산업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해운사 순위와 시장점유율. 그래픽 신재민 기자

글로벌 해운사 순위와 시장점유율. 그래픽 신재민 기자

실제로 EU 역내엔 글로벌 해운사가 대거 포진해 있다. 세계 5대 해운사 중 4개가 EU 국적사다. 해운 시장의 양강으로 불리는 MSC(스위스)·머스크(덴마크)는 물론 CMA-CGM(프랑스·3위)과 하파그로이드(독일·5위)가 모두 유럽 국적이다.

세계 해운 시장을 장악한 유럽 선사는 조선사들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저가 수주라는 혜택을 누려왔다. 그런데 세계 1·2위 업체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면 선사 입장에서는 협상력이 낮아진다. 경쟁 입찰 참여가 가능한 대형 조선사 중 하나가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MSC는 인천항과 러시아 캄차카반도를 잇는 신규 컨테이너 항로에 컨테이너선을 투 입했다. 사진은 MSC가 해당 항로에 투입한 'MSC NORA'호. [사진 인천항만공사]

MSC는 인천항과 러시아 캄차카반도를 잇는 신규 컨테이너 항로에 컨테이너선을 투 입했다. 사진은 MSC가 해당 항로에 투입한 'MSC NORA'호. [사진 인천항만공사]

이처럼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주판알을 튕기는 건 글로벌 M&A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발표한 반도체 설계 기업 ARM 인수도 비슷한 이유로 지연되고 있다.

미국 엔비디아는 지난 2020년 9월 소프트뱅크로부터 400억 달러(약 47조6000억원)에 영국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반독점 조사에 나선 데 이어, 영국 디지털문화부도 자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지식재산권에서 엔비디아가 주도권을 확보하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그래픽 신재민 기자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그래픽 신재민 기자

ARM·매그나칩 등 유사 사례 반복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 인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두 회사가 합병을 해도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은 19.4%로 20%에 미치지 못한다(지난해 3분기 트랜드포스 조사 기준). 하지만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1년 이상 반독점 심사를 끌다가 지난해 12월 22일이 되서야 인수를 승인했다.

매그나칩반도체(옛 SK하이닉스 비메모리사업부)가 중국계 사모펀드와 매각 계약까지 체결하고 M&A가 무산된 것은 중국과 공급망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견제하면서 틀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무산 역시 각국 반독점 당국이 영향을 미친 사례다.

12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합병을 앞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보인다. [연합뉴스]

12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합병을 앞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보인다. [연합뉴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의 M&A가 무산되자 시장의 시선은 항공업계로 쏠린다. 조선산업과 유사하게 항공산업도 사실상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거쳐 지난 2020년 11월 한국 기업 간 통합이 결정됐다.

이후 2년간 미국·EU 당국은 허가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항공산업도 운수권·슬롯 등 각국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조선산업은 특정 선사가 발주하는 기업간 거래(B2B)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최고 수준의 한국 기업이 합병을 추진하다 보니 수요자가 독과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항공산업은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 구조에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독점 노선도 우회 노선 등 다양한 경유 수단이 존재한다”며 “EU 등 각국 경쟁당국은 조선산업과 다른 기준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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