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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녹음’ 튼 날, ‘이재명 욕설’도 공개…막장 치닫는 대선판

중앙일보

입력

유력 대선 주자와 그 가족의 적나라한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정파성이 강한 매체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시작된 ‘마타도어(흑색선전)’ 공방에 여야가 뛰어들면서 “대선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같은 날 공개된 ‘김건희 7시간’, ‘이재명 욕설’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MBC는 16일 심층 보도 프로그램인 ‘스트레이트’ 방송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와 진보 유튜브 매체인 ‘서울의 소리’의 촬영기자인 이명수씨  사이의 사적 통화 내용 등이 담긴 7시간 45분짜리 녹음 파일 중 일부를 발췌해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법원에 통화 녹음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14일 수사 관련 사안 및 정치적 견해와 무관한 일상 대화 등의 보도만 금지하는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MBC는 이 법원 판단에 근거해 스트레이트 방송을 내보냈다. 평소 2%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스트레이트는 16일 방송에서 사상 최고 시청률인 17.2%를 찍었다.

보도 직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던 민주당은 17일 논평을 통해 윤 후보와 국민의힘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우영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김건희씨는 기자에게 구체적인 금액을 언급하면서 매수 의사성 발언을 했다”며 “김씨가 기자에게 한 행위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대변인은 “김씨의 ‘미투’ 운동에 대한 인식은 심각하다. 더구나 윤 후보 조차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며 “대통령 후보와 배우자의 관점이 반인권적, 반사회적이라면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의 소리 녹음-MBC 보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취재 윤리 위반 및 정치 공작 의혹 등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이날 국민의힘은 “일반적인 기자와 취재원과의 관계가 아니다”(윤희석 공보특보), “채널A가 당했던 함정 보도의 2탄”(김은혜 공보단장)이라며 MBC의 보도 과정을 집중 비판했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도 당 선대위 회의를 통해 “단순한 불공정을 넘어 매우 악질적인 정치 공작행위”라며 “MBC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공영방송이라면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테이프, 김혜경씨 관련된 것도 방송해서 국민이 균형 잡힌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당시 이 후보는 '형수 욕설' 논란과 관련해 "지금도 가족과의 다툼 내용이 녹음돼서 온 사방에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 많은 상처가 된다"면서 "어떤 경우에서든 그런 욕설 녹음이 만들어진 점, 제가 욕설한 점에 대해선 또 한 번 사과드린다. 제 부족함의 소산"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당시 이 후보는 '형수 욕설' 논란과 관련해 "지금도 가족과의 다툼 내용이 녹음돼서 온 사방에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 많은 상처가 된다"면서 "어떤 경우에서든 그런 욕설 녹음이 만들어진 점, 제가 욕설한 점에 대해선 또 한 번 사과드린다. 제 부족함의 소산"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뉴스1

그런데 권 본부장이 방송을 요구한 이 후보의 ‘형수 욕설’ 음성 파일은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에 의해 공개됐다. 가세연은 16일 오후 공개한 4분 25초짜리 영상을 통해 이 후보가 과거 자신의 형수와 나눈 통화 녹음 파일 및 이 후보 아내 김혜경씨가 자신의 조카와 나눈 통화 녹음파일을 연달아 공개했다. 지난달 16일 선관위는 유권해석을 통해 “이 후보의 욕설이 포함된 녹음파일의 원본을 그대로 트는 것만으로는 후보자비방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영상은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46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극단 치닫는 마타도어, 정치 혐오·회의감 키운다”

정치 전문가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의 마타도어 공방에 대해 “가치경쟁ㆍ정책경쟁이 실종된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여야 후보의 정책 공약이 표를 얻기 위해 한 방향으로 수렴되면서 차별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상대를 흠집 내거나, 상대를 부정해야 표가 나한테 오는 정치 구도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극단의 마타도어 전은 각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사람에겐 영향을 미치겠지만, 중도ㆍ무당층의 국민에겐 정치에 대한 혐오와 회의감만 안겨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판세가 불리한 쪽에서 마타도어 총력전을 펼치면, 상대도 이에 대응해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마타도어 공방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엄 소장은 “마타도어 공방은 결국 정당의 존립 근거 및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역대급 제살깎아먹기 경쟁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부정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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